brunch

그리울 번잡

성십자교회, 성모교회, 알베르티눔, 크리스마스마켓

by 주혜나

드레스덴_1


롤리스 홈스테이

어젯밤 우리는 드레스덴으로 넘어왔다.

드레스덴에선 처음으로 여럿이 쓰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카운터에 계신 분이 친절하다는 평이 많은 게스트 하우스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양갈래로 머리를 땋고 비니 모자를 쓴, 귀여운 외모의 주인장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하루에 수도 없이 많은 손님들이 오고 갈 텐데 그녀는 우리에게 숙소 사용방법과 주변 관광지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었다. 너무 친절해서 '매번 저러면 목이 버티기 힘들 텐데'싶은 염려가 생길 정도였다.

안내를 다 마친 그녀는 3층에 위치한 방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역시나 이곳에도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으로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 올라가는 우리가 안쓰러웠던지 그녀는 아이의 짐을 받아 날라주고는 돌아와 내 짐까지 들어주려 했다.

"아니야. 괜찮아. 내가 할게."

"봐봐. 내가 너보다 더 크잖아? 그러니까 내가 더 힘이 세. 걱정하지 말고 이리 줘."

괜찮다는 내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그 말에 당황해서 나는 그만 짐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키는 170센티미터, 발은 265 밀리미터. 한국에 살면서 한 번도 방금 그녀가 한 말 같은 종류의 문장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날씬하고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키가 180센티미터쯤 돼 보였다. 그녀 눈엔 나는 아담한 사이즈인 모양이었다.

"야, 엄마는 서양에 가면 딱 미듐 사이즈라니까."

한국에서 이 말을 하면 아이들은 내 말을 비웃었다. 한국에선 어딜 가나 엑스라지, 혹은 엑스엑스라지사이즈였으니까. 하지만 독일에 도착해서 첫 지하철을 타자마자 아이는 내 말을 이해했다. 손잡이의 높이 편차가 엄청나게 컸으며 제일 높은 손잡이는 거의 천장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딱 중간에 있는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호스텔 롤리스 홈스테이 드레스덴 (Hostel Lollis Homestay Dresden)
Görlitzer Str. 34, 노이슈타트, 드레스덴, 독일, 01099


필리피노 룸메이트

이 게스트하우에는 두 가지 타입의 룸이 있다. 혼성 도미토리 그리고 여성 전용 도미토리.

혼성 도미토리도 괜찮았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를 고려해 여성전용을 잡았다. 아이에게 혼성 도미토리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오묘한 신음소리를 들려줄 수는 없었으니까.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우리 방에는 아시안 여성들만 있었다. 자연스레 옆 침대에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한마디 걸자마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꾸를 했다. 5명이 있는 방에 우리 둘 빼고 나머지 셋은 필리피노였다.

"너희 한국인이지? 그럴 줄 알았어. 한국인들은 다들 피부가 엄청 좋아."

내가 한국인이라 말하기 전에 그녀들이 먼저 우리의 국적을 맞췄다. 그러곤 스몰 토크가 이어졌다.

그녀들 중 두 명은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고, 한 명은 대학 졸업반 학생이라고 했다. 과거 한국 여성들이 많이 왔던 독일 간호사를 이젠 필리피노들이 대체한 모양이었다.

"베를린에 산다니 좋겠다! 우리 베를린 여행하고 오는 길이야. 너무 좋아서 또 가고 싶어."

"여행으로 오면 좋지. 그런데 살기엔 썩 좋지 않아. 너무 비싸거든. 모든 게 너무 비싸거든."

내 말에 그녀 중 하나가 대답했다. 우린 간호사 생활에 대해 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봐도 돼?"

"응. 초임은 보통 3000유로 정도인데 경력에 따라 월급이 계속 올라가. 여러 가지 수당도 붙고. 그래서 일을 많이 하면 많이 벌 수 있어. 베를린 집세가 비싸긴 하지만... 혼자서 살기엔 충분하지. 그런데 우린 필리핀 가족들에게 돈을 많이 보내서 아껴 쓰고 일을 많이 해야 돼. 이렇게 여행이라도 다니려면 더더 많이."

"독일어 잘해야 되지?"

"B1 정도면 취직할 수는 있는데, 실제론 그보다 훨씬 더 잘해야 돼. 난 지금 C1정도인데 여전히 듣고 말하는 게 어려워. 환자들이 대부분 노인이라 옛날 말을 많이 쓰시거든. 그래도 독일인 동료들이 잘 도와주는 편이야."

"복지는 어때?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도 계속 일 할 수 있어?"

"당연하지.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아이가 어리면 돈 받으면서 쉴 수도 있고, 근무시간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어.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 오히려 아이를 낳으면 이득이라서 일하다 좀 힘들 때쯤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어. 너희 한국은 아이를 많이 안 낳는다며?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에게 들었어."

"응. 맞아. 한국은 출산율이 1 아래로 떨어졌어. 슬프지. 여기 오니까 아이들이 많이 보여서 좋더라."

"독일은 최소 2명 이상은 다 낳는 것 같아. 3, 4명도 많고. 필리핀은 보통 4명은 다 낳아."

간호사 일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는 말에 과거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 생각도 나고, 아이 키우기 좋다는 말에 '진작에 나왔어야 되나.' 싶은 마음도 들고.... 짧은 대화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십자 교회

대화를 끝내고 우리는 길을 나셨다. 버스정류장 앞에는 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일요일이라 아이들과 나와 노는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잔디밭을 뛰어노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독일은 어딜 가나 아이들이 많이 보여서 참 좋았다.

제일 먼저 드레스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성 십자 교회에 갔다.

성 십자 교회(Kreuzkirche)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교회 중 하나로, 13세기에 처음 세워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전쟁 후 콘크리트를 사용한 간결한 양식으로 복원되었다. 이는 건축가 프리츠 슈토이트너가 '절제된 영성'을 강조하며 콘크리트를 사용해 내부를 복원한 이유도 있고, 패전 당시 예배 공간이 급하게 필요했지만 재정이 넉넉지 않았던 탓도 있다.
내부에는 1963년에 완성된 대형 Jehmlich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레스덴 소년합창단은 현재도 이곳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이 교회는 독일에 와서 보았던 교회 중에 가장 소박한 내관을 가지고 있었다. 포츠담 궁전의 화려함에 놀랐던 우리는 절제된 미를 가진 이 교회만의 매력에 조용히 빠져들었다. 금박 하나 없는 회색 벽은 오히려 더 경건한 느낌을 주며 신앙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했다.

아이는 이곳에서도 대형 파이프 오르간에 시선을 빼앗겼다. 한참 같이 오르간을 쳐다보고 있는데 오르간 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오르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짧은 연주였지만, 그 거대한 오르간이 눈앞에서 연주되는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드레스덴 성 교회 오르간연주


성모 교회

성십자 교회에서 나와 프라우엔 교회로 향했다. 교회 앞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크게 열리고 있었다. 오는 길에도 이미 여러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나 온 후였다. 어젯밤에 숙소 주인이 드레스덴엔 지금 크리스마스 마켓이 굉장히 많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한국인 관광객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교회 내부에 들어서자 우리는 교회의 장엄함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성모교회(Frauenkirche Dresden)는 독일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루터교 교회이다. 1743년에 완공되었으며, 둥근 돔 형태의 지붕은 유럽에서도 뛰어난 건축기술로 손꼽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붕괴되었고, 동서독 통일 이후 복원되었다. 1994년부터 시민들과 국제사회의 기부로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어, 2005년에 재개관했다. 외벽의 일부는 원래 석재를 사용하여 복원하였다.

석회질 재료를 사용해 내부를 꾸민 탓에 차분한 아이보리 톤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감마다 금빛을 사용하여 화려함을 놓치지 않았다.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돔 아래,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벽과 섬세한 금장 장식들이 햇살을 받아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정면에 있는 강단에는 천사 형상의 조각들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돔 아래 그려진 그림들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이게 현실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찬란한 색감과 조각, 빛의 조화는 오히려 앞서 보았던 성십자교회의 절제를 떠올리게 했다.

두 교회가 보여주는 미의 양극단 사이에서 우린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알베르티눔

독일 여행을 하다가 일요일이 되었다면 가까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 보아야 한다. 대부분이 일요일 오후는 무료, 또는 아주 적은 금액의 입장료만 받기 때문이다.

여행 중 두 번째 일요일을 맞은 우리는 드레스덴에 있는 미술관 중 근현대 작품을 전시하는 '알베르티눔'에 가기로 했다.

알베르티눔은 드레스덴의 엘베강변에 위치한 근현대 전문 미술관이다. 19세기부터 현대까지의 회화를 다루는 ‘신거장 회화관’과 다양한 시대의 조각을 전시하는 ‘조각 컬렉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인상주의의 '모네', 표현주의 작가 '오토 딕스' 등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원래는 병기고였던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을 개조해 사용하며, 현대적인 유리 지붕과 중정이 인상적인 구조이다.

입구는 많은 관람객들이 때문에 조금 혼잡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자 여느 미술관과 같이 고요함이 감돌았다. 밖에서 보기에는 중후한 석조 건물이지만, 내부는 유리 지붕 아래로 자연광이 쏟아지는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회화관에서는 독일 낭만주의부터 인상주의, 표현주의, 그리고 현대 회화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듯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앞에 많은 사람들이 멈춰 서 있었다. 안개 낀 바다와 외로이 서 있는 인물, 폭풍우가 몰아치는 풍경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많은 그림 중에 사진을 찍어 온 그림이 하나 있다. 소박한 서민들의 집에 빨래가 걸려 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이 내 눈에 띄었던 이유는 작품의 구성 때문이었다. 당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 같은 풍경을 담은 아주 소박하고 작은 이 그림을 엄청나게 화려하고 커다란 액자 속에 넣어 놓았으니 말이다.

작가의 위트였는지, 풍자였는지. 혹은 액자가 이것밖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는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니?'

그림에게 넌지시 물었다.

'네가 지금 느끼는 그 이야기.'

그림의 대답에 나는 조금 더 그 앞에 머물렀다.


노신사 버스커

알베르티눔에서 나오자 바람이 매서웠다. 갈수록 찬 바람이 부는 게 당연했다. 한국인은 추우면 뜨거운 국물을 먹어야 되니까 우린 자연스레 또 쌀국숫집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돌 바닥이 깔린 오래된 골목길을 구불구불 따라가는 기분 좋은 길이었다. 식당에 거의 다다랐을 때, 서서히 어디선가 감미로운 기타 연주가 들리기 시작했다.


띵띵 동도로동똥 또롱 똥또도 동


클래식 기타를 치는 노신사였다.

신사는 이곳을 아주 잘 아는 것 같았다. 어스름해지는 공기와 주변에 들어선 적당히 높은 건물들이 음향장비 하나 없이도 기막힌 에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신사 앞에 한동안 서서 음악을 들었다. 신사의 손가락은 빨개졌지만 음악 어디에서도 티가 나지 않았다.

주머니가 빈약한 여행자였지만 그렇게 황홀한 순간을 즐기고 그냥 지나갈 순 없었다. 우린 2유로 동전을 꺼내 그의 기타 케이스에 안에 넣었다. 화장실 때문이 아니더라도 2유로 동전을 꼭 지갑에 비축해야 하는 이유였다.

독일 여행 중, 불쑥불쑥 만나는 버스커들.

한국에 돌아간 후, 내가 독일에 와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중 팔 할은 그들의 책임이 틀림없을 터였다.


스트리첼 마르크트

뜨끈한 쌀국수를 먹고 나니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길 시간이었다.

며칠 전부터 독일은 완벽한 크리스마스 시즌에 접어들었고, 드레스덴은 세계 각국에서 찾아올 만큼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린 가장 크고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알트마르크트(올드마켓, Altmarkt)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트리첼마르크트(Striezelmarkt)는 15세기에 시작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 중 하나이다. 알트마르크트 광장에 열리며 거대한 목조 크리스마스 조형물이 유명하다. 시장 곳곳에는 수공예 장식품과 전통 음식을 파는 목재 오두막 부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글뤼바인, 브라트부어스트, 드레스덴 슈톨렌을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겨울 명소이다.
드레스덴 시청이나 성십자교회의 전망대에 오르면 크리스마스 마켓과 드레스덴 야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와우. 그런데 인파가.... 얼마나 많던지.

광장을 가득 채운 목조 오두막과 반짝이는 전구, 커다란 크리스마스 탑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사진 한 장 제대로 찍기가 힘들 만큼 거리는 북적였다.

사람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우리 모녀는 그곳에서 오래 버티기가 어려웠다. 성 십자 교회의 종탑에 오르는 것도 깔끔히 포기했다.

마켓에서 나와 서둘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한걸음 떨어져서 보니 평소엔 무뚝뚝해 보이는 독일인들의 들뜬 표정이 더 잘 보였다. 글루바인을 한잔씩 들고 삼삼 오오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정신없이 북적여도 괜찮으니 크리스마스가 조금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울 번잡

숙소로 돌아오니 일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작은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 잠깐 몸을 누이는데 필리핀 친구들이 어서 오라며 먼저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 지금은 좀 혼자 있고 싶은데....'

잠깐 망설였지만 다시 오지 않을 오늘임을 알기에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갔다.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이미 우리 자리를 맡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내향적인 내 곁에 외향적인 친구들이 있다는 게 삶에서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러앉은 친구들과 한참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친구들은 여러 가지 정보를 나눠 주었다.


요란한 저녁이 끝나고, 몫의 침대에 커튼을 쳤다. 스르륵 몸을 뉘이자 서늘하지만 포근한, 내가 사랑하는 고요가 나를 감쌋다. 그제야 나는 편안한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유난히 북적였던 하루였다.

같이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같이 있고 싶은... 요상한 인생의 딜레마에 눈썹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음 겨울이 오면 나는 이 번잡했던 하루가 또 얼마나 그리울지...

왠지 이미 알 것 같은, 희한한 밤이었다.


keyword
이전 12화기어코 살아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