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거 궁전, 성삼위일체 성당, 레지던츠 궁전, 군주의 행렬
철컥, 철커덕. 위잉. 팍.
낯설지 않은 공사장 소음이 독일의 아름다운 관광지로 이름난 츠빙거 궁전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여전히 기품 있었지만, 궁전 안뜰에 있어야 할 아름다운 정원은 공사장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여행 전에 봤던 사진 속에서는 분수가 반짝이며 빛나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은 파란 하늘 아래 초록빛을 뽐내고 있었는데…
그날은 하늘도 무심히 잿빛이었다.
비라도 한두 방울 금방 쏟아질 듯한 눅눅한 공기엔 풀 내음 대신 흙먼지 냄새가 흩날리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기대했던 내부 전시실은 하필이면 휴관이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랠 겸 성벽을 따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오래된 벽돌 틈새를 관통하며 지나가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바람은 우리의 코끝과 목덜미도 파고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저만치 앙상한 가지에 걸터앉은 까마귀 한 마리가 낮게 울었다. 망치질 소리, 중장비가 돌아가는 엔진음, 그리고 까마귀의 까악- 하는 울음소리가 묘하게 얽혀 묘하게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츠빙거 궁전 보러 다시 와야겠네!”
아이와 나는 웃으며 언제 올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츠빙거 궁전은 독일 드레스덴에 위치한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궁전이다. 원래 18세기 초 아우구스트 왕이 연회와 축제를 위해 지은 곳으로, 화려한 조각과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으로 궁전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후 세심한 복원 작업으로 원형이 되살아 났다. 현재는 궁전 내부에 고전 미술관, 도자기 박물관, 수학·물리학 전시관 등이 있다.
궁전을 나서자 바로 옆으로 웅장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 있는 드레스덴 궁과 한 몸인 듯, 두 건물은 하늘 위로 연결된 구름다리를 통해 오고 갈 수 있게 연결되어 있었다. 왕과 귀족들이 굳이 흙길을 밟지 않고도 쉽게 미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지은 다리였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건물 외곽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회색빛 벽을 따라 성인의 석상들이 빙 둘러 세워져 있었다. 제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이 모든 것이 1980년대에 복원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독일의 복원 기술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성당 내부는 밖에서 본 것만큼 웅장하진 않았다. 오히려 소박하고 담백한 첫인상이었다. 하얀 바탕 위로 로코코양식으로 조각된 금빛 장식들이 군데군데 빛나며 고요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당 내부에 많은 사람들이 오르간 앞에 모여 있었다. 파이프가 웅장하게 천장을 향해 뻗어 있었고, 정교하게 조각된 금빛 장식물이 파이프를 감싸고 있는 멋진 오르간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17세기에 활동했던 한 유명한 오르간 제작자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라 유명한 오르간이라고 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고 전쟁과 복원을 거치며, 아직도 그 소리가 이 공간을 채운다는 사실에, 소리를 듣지 않았지만 왠지 그 소리를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삼위일체 성당(Hofkirche St. Trinitatis)은 독일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바로크 양식의 가톨릭 성당이다. 1739년부터 1755년까지 아우구스트 3세의 명으로 지어졌으며, 외벽에는 70개가 넘는 성인상이 장식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쟁 후 세심한 복원 작업을 거쳐 원형이 되살아났다. 성당 내부 지하에는 작센 왕가의 무덤들이 안치되어 있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장소이다.
언제나 소중한 커피 브레이크 타임.
겨울에 독일 여행을 오니 좋은 점이 꽤 많았다. 무엇보다 비수기라 숙소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어디를 가도 인파에 치이지 않고 한적하게 유명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모자와 장갑을 끼고 한적한 독일의 골목길을 걸으며 겨울바람을 맞는 일은 낭만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아쉬운 점도 있었다. 공사 중인 곳이 유독 많았고, 하늘은 연일 흐렸다. 잿빛 하늘 아래 서 있으면 마음마저 축축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웠다. 때로는 뼛속이 서늘할 만큼 많이.
여행이 중반쯤에 접어들자 우리는 컨디션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추위를 견디고, 기분이 너무 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욕심을 좀 내려놓고 중간중간 쉬어 가는 게 중요했다. 적절한 타이밍의 커피 브레이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커피값을 아끼겠다고 무턱대고 계속 걷다 보면 다리도 마음도 점점 무거워진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에, 하루의 중반쯤에는 반드시 따뜻한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마음을 쉬어갔다.
독일의 밀크 커피는 유난히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신선한 원두에 잘 데워진 우유가 더해져, 얼어붙은 손끝까지 녹여 주었다. 이날도 레지던츠 성에 가기 전, 우리는 작은 카페에 들러 몸을 녹였다. 주문한 케이크 위에 손톱만 한 귀여운 진저쿠키가 올라가 있었는데, 그 작은 쿠키 하나가 우리에게 미소를 안겨주었다. 추위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소하지만 기분 좋은 순간들이 계속 걸어갈 힘을 주었다.
레지던츠 궁전은 볼거리가 아주 많다고 해서 기대를 잔뜩 안고 들어섰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초록 금고’였다.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왕실 보물관 중 하나라고 한다.
‘신 초록 금고’에서는 일부 구역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역사적 초록 금고’는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였다.
입구에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받아 들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초록 금고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온갖 진귀한 보석들이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다녀본 박물관 중에는 경주 국립박물관이 금장식이 많아 가장 화려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금보다도 보석의 화려함이 압도적이었다.
“그거 봤어?”
“저기 가봐. 완전 대박이야.”
아이와 나는 각자의 속도로 전시를 감상하다가 서로 좋았던 보물을 알려주며 몇 번이고 흥분을 나눴다.
그러다 우리는 ‘드레스덴 그린’이라 불리는 녹색 다이아몬드 앞에서 다시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녹색 다이아몬드라는데, 작센 왕가를 따라 내려오며 다이아몬드를 감싼 장식이 여러 차례 변형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초록색 다이아의 영롱함이 왕가의 권위를 더욱 굳세게 해 주었을까.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생각했다.
그 외에도 수백 명의 피겨로 재현된 궁정 모형, 세공 기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정교한 보석상자, 황금으로 만든 커피잔 세트, 상아와 호박으로 만든 각종 장식품들까지…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세밀한 각종 보물들이 그곳에 다 모여 있었다.
이 보물들은 약탈품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작센 왕가가 선물로 받거나 직접 장인에게 의뢰해 만든 것들이라고 했다. 대영박물관처럼 식민지에서 빼앗아 온 것은 아니니 떳떳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이 쌓이는 동안 그 아래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은 무거운 세금과 허기진 배를 견뎌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왕족들의 손 안에만 머물던 보물들이 이제는 누구나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이 그때보다는 분명 조금은 나아졌으니까.
그러나 곧 ‘누구나’라는 말이 아직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생각에 마음 한편이 헛헛해졌다.
초록 금고를 나와 발걸음을 옮기니, 다른 전시실에는 칼과 총 같은 각종 무기들부터 방패와 갑옷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 유럽의 갑옷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라, 나는 신기한 마음에 가까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무겁게 빛나는 철 갑옷은 당장 전장에 입고 나가도 손색이 없을 것만 같았다. 갑옷을 입고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사람과 사람이 맞붙어 싸웠을, 피가 난무했을 그 시대의 전장이 머릿속에 그려져 살짝 소름이 돋았다.
조명이 어둡게 깔린 전시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검은 갑옷을 입고 늠름히 서 있는 기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옆에는 역시 갑옷으로 무장한 말 한 마리가 고개를 살짝 든 채 멈춰 있었다. 마치 금세라도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이방인을 향해 거친 숨을 뿜어 낼 것만 같았다. 말과 기사의 투구 위로 치솟은 크고 풍성한 노란 깃털 장식은 마치 전장 속에 불타는 횃불처럼 보였다. 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어떻게 싸웠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기사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그 무겁고 장엄한 갑옷의 무게, 그리고 전투의 냉혹함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전쟁관 옆으로는 귀족들이 입었던 중세 시대 의복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비단과 벨벳에 얹힌 화려한 색감과 금실 장식, 손으로 수놓은 무늬들이 아직도 빛나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옷을 입고 어떻게 생활했을까. 굵은 벨벳 소매 끝에 달린 금단추 하나에도 권력과 부의 무게가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한복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
“궁중 예복 같은 거 보면 정말 신기하겠다.”
낯선 문화 앞에서 아이와 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시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녀석의 세계가 넓어지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문화, 시대, 역사를 만난다는 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가 더 넓어진다는 뜻일 테니까. 열다섯의 아이는 길 위에서 직접 다른 문화를 마주하고, 몸으로 경험하며 직접 다른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
레지덴츠 궁전(Residenzschloss)은 독일 드레스덴에 위치한 옛 작센 왕국의 왕궁이다. 중세부터 작센 선제후와 왕들이 거주하던 권력의 중심지였으며, 바로크와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큰 피해를 입었지만 오랜 복원 끝에 다시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는 초록 금고, 무기·갑옷 박물관, 코인 컬렉션 등 다양한 전시실이 모여 있는 박물관 복합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밤이 조금 늦었지만, 다음 날이면 드레스덴을 떠나야 했기에 군주의 행렬 벽화만큼은 꼭 보고 가야 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벽화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지던츠 궁전의 한쪽 벽면을 따라 100미터가 넘게 길게 이어진 이 벽화는 무려 만들어진지 150년 가까이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벽화에 도착해 가까이서 보니 비밀은 재료에 있었다. 벽화는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작은 자기 타일을 이용해 모자이크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는 19세기 프레스코화였지만 손상이 점점 심해지자 1900년대 초에 모두 자기 타일로 교체했다고 한다.
이 벽화 속에는 작센 왕가의 군주 35명이 줄지어 행진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곧 작센 왕가 800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벽화 속 인물들은 모두 표정도 동작도 다 달랐다. 그들의 모습에서 각자의 신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벽화는 드레스덴 폭격에도 거의 무사히 살아남아 원형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드레스덴은 단연코, 매력적인 도시였다.
옛 모습을 섬세하게 복원한 아름다운 궁전과 성당, 오페라 하우스 같은 건물들이 곳곳에 서 있는 이 도시에서는 그냥 길을 걷기만 해도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거기다가 다양한 문화적 볼거리들까지 더해지니,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트램을 타러 가는 길, 가로등이 켜진 엘베 강변의 풍경을 보니 ‘엘베의 피렌체’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단번에 알 것 같았다. 낮에도, 해질 무렵에도 얕은 스카이라인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피렌체를 가보지 않았지만, '엘베강의 드레스덴'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드레스덴은 한때 무자비한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옛 모습을 되살려낸 사람들의 손길 덕분에 다시 아름답게 부활했다. 그 노력들이 도시 곳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숨 쉬고 있는 오늘의 드레스덴이 더 특별한 이유였다.
여행의 마지막 밤, 마지막 트램을 타러 가는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광장에 울려 퍼지는 버스커의 노랫소리와 그 곁을 평화롭게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 마음을 더 붙잡았다. 아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쉽게 정류장 쪽으로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언젠가 다시
조금 더 따뜻한 계절에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러 오겠다고.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 트램에 올라탔고, 창밖으로 천천히 멀어지는 도시의 불빛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