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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겠지만

베를린 대성당, DDR 박물관, 크리스마스 마켓

by 주혜나

베를린_3


베를린의 세 번째 아침은 어둡고 축축했다.

창밖에선 거친 바람이 앙상한 가지를 마구 뒤흔들었다. 오전이 다 가도록 아이와 나는 나란히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덧 여행 열흘째. 날씨 핑계를 대며 조금 쉬어가기 좋은 날이었다.

한참을 뒹굴거리다 아무래도 누워만 있기엔 시간이 아까워 비바람을 뚫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베를린 돔(대성당)이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젖은 돌바닥이 발 밑에서 맨들맨들 반짝거렸다. 비바람이 부니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졌지만 또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버티며 걷다 보니 잡생각이 없어지고 가야 할 길만 머릿속에 또렷이 남았다.


베를린 돔

웅장한 베를린 돔에 도착했지만 우린 그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 금세 뒤집힐 것 같아서 우산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서둘러 입구로 뛰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티켓을 사고, 백팩을 보관하고 내부로 들어갔다.

정신이 없던 외부와 달리 예배당 내부는 고요했다. 따뜻한 금빛이 가득한 예배당이었다. 높은 천장, 천천히 내려오는 아치들, 벽을 따라 새겨진 조각과 그림들. 독일의 교회들은 예배당마다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베를린 돔은 독일 베를린 중심에 위치한 개신교 대성당으로, 1905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완공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돔의 중앙 부분이 크게 파손되어, 이후 오랜 기간 폐쇄된 채 방치되었다가 1975년부터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복원은 통일 이후에도 이어졌고, 1993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개장했다. 내부에는 세계 최대급 파이프 오르간과 프로이센 왕가의 납골당이 있으며, 전망대에서는 베를린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이와 나는 각자 천천히 예배당 구서구석을 돌아보았다.

“엄마, 여기 파이프 오르간 대박이야.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큰 것 같아.”
옆으로 온 딸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파이프 오르간이 여긴 어느 성당에나 있다며 아이는 교회에 갈 때마다 신기해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소리가 예배당 가득히 울려 퍼졌다. 처음엔 낮고 묵직하게, 이내 천사의 날갯짓 같은 높고 환한 음이 더해졌다. 공간을 울리는 진동이 피부를 타고 온몸으로 번졌다. 우리는 그 감동을 온전히 느끼고자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연주는 길지 않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선 아주 오래도록 남을 귀한 시간이었다.

베를린 돔에서 나오자,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우리의 얼굴에 부딪혔다. 바로 옆에는 슈프레 강이 흐르고 있었다. 검푸른 물살이 마치 오래된 역사가 묵묵히 흐르는 것 같았다. 강물의 낮고 깊은 소리가 오르간 소리의 여운과 함께 귓전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DDR 박물관(독일민주공화국 박물관)

DDR 박물관은 동독(DDR)의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실제 동독 시절의 아파트를 재현하고, 트라반트 자동차 시뮬레이터나 비밀경찰 슈타지의 감시 체험 등 다양한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약 3만 점에 달하는 전시물을 통해 당시의 옷, 가전제품, 장난감 등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

바람이 많이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날씨가 좋지 않았다. 우린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DDR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날씨 덕인지 박물관 안은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 빼곡히 전시된 20세기 동독의 흔적들. 철제 캐비닛, 낡은 라디오, 복제된 학교 교실, 간이 부엌, 붉은 깃발, 그리고 고위층이 살던 아파트 내부까지. 모두가 비슷한 구조의 집에서 비슷한 가구를 놓고, 비슷한 색깔의 벽지를 바르고, 정해진 텔레비전을 보며 살아갔을 그때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사회주의 이념은 평등을 말하지만, 그 평등이 실현되는 방식은 언제나 틀 안에 갇힌 획일성이다.

그렇게 이루어진 평등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전반적으로 유쾌하게 꾸며진 전시였지만, 나는 내내 혼자 생각했다.
‘사회주의는 왜 늘 무너지는 걸까? 더 갖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까? 책임을 미루는 나태함? 아니면 지배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일까? 결국엔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기념품 판매대를 둘러보는데 동독의 선전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밝은 얼굴로 일하는 사람들 뒤로 붉은 태양이 떠올라 있는 그림이었다.
문득, 태양 자리에 돈다발만 가져다 놓으면 현대의 자본주의를 풍자하기에도 꽤 그럴듯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박물관을 나오니 길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더 이상 비바람은 불지 않았다. 작은 관람차와 거대한 타워 불빛이 촉촉함 밤의 야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잠깐 쉬어갈 곳이 필요해 카페에 들어갔다. 따듯한 차와 에그타르트를 시켜 자리에 앉았다. 창문엔 하얗게 김이 서려 있었고, 안쪽엔 몇 명의 손님들이 저마다의 대화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사회주의는 왜 실패한 것 같아?”
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인간의 욕심? 욕망? 뭐 그런 거 때문이지 않을까?"
따뜻한 차를 호호 불며 아이가 대답했다.

"내 생각엔... 인간이 본래 약한 존재라 그런 것 같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사회주의 이념 자체는 굉장히 좋잖아. 모두가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는 세상. 얼마나 이상적이야. 근데 그걸 유지하려면 사람 마음이 엄청 단단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나 봐. 특히 권력 앞에서 사람이 약해지는 거지. 권력이 생기면 욕심이 따라오고, 욕심에 사로잡히면 정상적인 사고가 무너져 버리나 봐.”

“그럼 민주주의는 괜찮아?”

아이가 다시 물었다.
“글쎄. 그것도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으로선 왕정국가, 사회주의 국가들은 다 몰락하고 민주주의 국가들만 건재하니까... 나쁘지 않다고 봐야겠지? 민주주의가 선해서라기보다... 자본이 권력이 되고, 권력이 비교적 분산이 되니까 조금 더 안전한 게 아닐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더 말을 하면 꼰대가 될 것 같아서 나도 입을 다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 마켓

카페에서 나오니 베를린 돔 옆에 펼쳐진 크리스마스 마켓에 화려한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좀 일찍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다 생각했지만 그 광경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독일여행 열흘 만에 처음 만난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마켓이었다.

마켓에 입장하니 추운 날씨에도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다들 손에 따뜻한 글루바인을 한잔씩 들고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부어스트를 베어 먹으며 인파들 속을 함께 걸었다. 곳곳에서 피어나는 맛있는 음식냄새, 특히 고소한 바움쿠헨(굴뚝빵)의 향기 덕에 마음속 까지도 풍족해지는 것 같았다.

각지에서 모여든 수공예품 가판대를 구경하다 털실로 짠 수공예 양말 가게 앞에 발이 멈췄다. 겨울엔 늘 양말을 신고 자는 둘째 아이가 떠올랐다. 열세 살이 되었지만, 이제 키가 언니보다 더 클 만큼 훌쩍 자랐지만, 여전히 깜깜한 곳에서 잠자는 걸 무서워하는 귀여운 녀석이었다. 언니와 한 달 여행을 떠난다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던 녀석을 위해 꽤 높은 가격에도 빨간 별무늬 양말 한 켤레를 샀다.

걷다 보니 각종 미니어처 술병이 눈에 띄었다. 어찌나 귀엽던지 종류별로 사고 보니 제법 많았다. 딱 한 모금이면 끝나는 술병들을 하나씩 열어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랐다. 옆에 있는 아이를 보니 추위에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 왜 그래에!"

아이도 장난스레 내 손을 피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오늘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을 떠올렸다.

직접 보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공교육에선 벗어났지만 '로드스쿨링(road schooling)'을 잘하고 있는 아이와 그 하루에 고마웠다.

세상은 정답이 없는 질문들로 가득하지만, 함께 고민할 누군가가 있다면 삶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의 남은 삶 속에 그런 친구를 많이 좀 보내주세요. 괜찮으시다면, 제 남은 시간에도요.'

짝 눈을 감고 속으로 기도했다.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밤이 밝고 환하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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