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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r 07. 2024

글을 머리로 쓴다고? 글쎄, 그건 아니지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글은 손이 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머리로 쓰는 줄 알았다. 머리로 생각하고, 머리로 상상하고, 머리로 구성해서 쓴다고 믿었다. 허리디스크로 꼼짝없이 몇 달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을 때, 머리로 쓴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지하고 순진한 생각인지 깨달았다.



앉을 수 없으니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을 쓰지 못하고 오랜 시간 답답해하다, 문득 스마트 폰의 받아쓰기 모드를 실행시켜 보았다. 예전에도 한 번 써본 적 있었는데, 그때는 받아 쓴 문장에 오류가 너무 많아 다시 고치는데 시간이 더 들었다. 몇 년 새 기술이 발전해 봐야 얼마나 발전했겠나 싶어 큰 기대 없이 시도해 봤는데, 생각보다 내 말을 잘 알아들었다. 한 문장에 한두 군데 틀리는 정도니, 이만하면 불러주는 문장을 잘 받아 적는 편이다. 문제는 받아쓰기 기능의 기술 수준이 아니었다.


받아쓰기 기능을 실행시켜 놓고 나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분명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갑자기 그 모든 말이 사라져 버렸다. 누가 글을 머리로 쓴다고 했던가? 머릿속에 글로 쓸 내용이 정말 있다면, 왜 손이 아니라 입으로 꺼내려고 하면 나오지 않는 걸까?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손으로 쓰는 것이었다. 아니 손이 쓰는 것이다. 결국 글은 내 머릿속이 아니라 손끝에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받아쓰기 기능을 포기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


“로즈,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걸세.”


이렇게 말한 리처드 로즈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 주장했다. 글 쓰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든 그렇지 못하든, 글을 쓰려면 매일 일정 시간 글을 쓰기 위해 앉아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과정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든다.
이걸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추어로 남는다.
-제럴드 브레넌


매일 노트북이나 타이프라이터, 아니면 흰 종이나 공책이라도 앞에 두고 앉아서 쓰는 사람이 작가다. 작가는 허리가 튼튼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잘 버틸 수 있어야 작가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다.





글은 발로 쓴다


글은 발로 쓰는 거라고 주장하는 작가들도 많다. 기사문 작성처럼 현장을 발로 뛰면서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쓰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많이 걸어야 글이 나온다는 순수한 걷기 예찬에서 나온 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세갈렌, 피에르 쌍소, 랭보…  글을 쓰는 수많은 사람이 걷기를 즐겼다. 여행이나 운동이 목적이 아닌 걷기를 위한 걷기, 순수한 걷기를 예찬했다.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진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어수선하고 조급하게 돌고 있는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각에 집중할 수 있다. 걷다 보면 안 풀리던 글이 술술 풀리면 어떻게 써야 할지 실마리를 얻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작가가 쓰기 위해 걸었고, 걷고 또 걸었기에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




머리가 아닌 모든 것으로 쓴다


누군가 내게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글은 머리가 아닌 그 모든 것으로 쓰는 것이라 답하겠다.



오늘 당신의 손은, 엉덩이는, 발은 안녕하신가? 글을 쓰기 위해 머리는 잠시 쉬게 두고, 손과 엉덩이와 발을 쓸 준비를 해 보자.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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