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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19. 2024

지루한 것보단 고생이 낫다

하이난 섬_중국

중국에서 산 지 16년째 되는 해 여름 두 아이와의 한 달 살기 목적지로 하이난(海南)을 정했다. 2021년은 코로나 19 때문에 해외에 나가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을 때였다. 하이난은 이미 여러 번 가본 곳이라 설렘이 적었지만, 상황을 고려해 한 달 여행의 목적지를 하이난으로 정했다.


그동안 여러 번 가봤다고는 해도 전부 겨울에 일주일 미만 짧은 여행이었고, 늘 호텔 리조트에 머물렀었다. 여름에 떠나는 한 달 여행은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나 Ctrip*에 나온 다양한 임대 숙소에 머물렀다.  편안한 잠자리와 깔끔한 조식을 원하고 놀람이나 당황이 싫다면, 호텔에 머무는 편이 좋다. 대신 호텔 리조트에 머물면 지루할 수 있다. 호텔 리조트에서의 경험은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든 비슷하기 때문에 ‘깜짝 놀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5성급 호텔에서도 베드 버그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코나키나발루에서.)


에어비앤비 등 공유 숙소는 '안전과 편안함'을 약속해 주지 않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 집마다 특유의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집은 그 주인을 닮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듯 예약된 숙소를 찾아갈 때는 설렘이 있다. 몇 년 간의 한 달 여행을 돌아보면, 다양한 숙소에서의 경험이 추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곤 했다.


체코 프라하 미샤의 숙소


예를 들면, 러시아 타간로크는 몹시 친절했던 빅토리야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던 그녀의 침대로 기억된다. 침대 스프링이 너무 낡아 가운데로 쑥 꺼지는 바람에 잘 때마다 절벽을 기어오르는 꿈을 꿨던 것이다. 프라하 미샤의 숙소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쓰던 낡은 타이프라이터와 수많은 책들로 마치 동유럽의 작가가 된 듯한 분위기에 젖을 수 있었지만, 낡은 세탁기가 말썽이었다. 잘 돌아가다 탈수 부분에서 멈추기 일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손으로 힘겹게 짜야했다. 이렇게 모든 여행지에는 숙소에 얽힌 추억이 있다.


러시아 타간로크 빅토리야의 숙소


하이난 한 달 여행 동안 머문 집들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이 있었다. 첫 번째 숙소는 침실 창에서 아침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매일 조금씩 다른 노을 빛깔에 감탄하며 아침을 맞았다. 대신 청소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했고, 변기가 쉽게 막혀 화장실 갈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하이난 첫 번째 숙소 침실에서 본 아침놀


두 번째 집은 일본풍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집이었는데, 거실 한가운데 그네가 달려 있었다. 누가 실내에서 그네를 탈까 싶었는데, 머무는 내내 아이들이 그네를 좋아했다. 이 집에서는 에어컨이 말썽을 부려 수리하는 동안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있다.


하이난 두 번째 숙소 거실 풍경


세 번째 집은 링쑤이(陵水)라는 한적한 곳에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어 아름다운 해변이나 수영장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사용할 수 있었다. 멋진 마작 테이블이 있어, 일주일 머무는 동안 마작을 배웠다. 프로젝터 덕분에 밤중에는 홈시어터로 변신했다. 1층이라 마당도 있고 복층 집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꾸며져 있어, 거의 완벽에 가까워 보였다.


하이난 여행 세 번째 숙소


굳이 문제라면 식량 문제뿐이었다. 숙소 단지 내에는 작은 슈퍼 하나와 식당 하나가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슈퍼에는 물과 음료, 라면과 과자 정도 외에는 살 수 없다. 과일 천국 하이난에서, 과일을 살 수도 없었다. 뭐든 배달해 주는 메이투안(美团:배달 앱)마저 숙소가 너무 외진 곳이라 배달이 되지 않았다. 시장이나 식당으로 가려면 차를 타고 최소한 20분 정도는 나가야 했는데, 우리는 차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라면만 먹어도 좋은 바다 풍경


저녁 늦게까지 수영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라면을 먹었다. 벽면 전체에 프로젝터로 화면을 띄워 영화도 신나게 봤다. 일주일쯤 라면만 먹는다고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테고, 이곳은 또 이곳에서의 적응 방법이 있겠지.


초콜릿을 몹시 좋아하는데 그중 최고는 다크 초콜릿이다. 카카오 함량이 최소한 50% 이상은 되어야 달콤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여행에서 하는 ‘고생’의 요소가 바로 초콜릿에서 쓴맛을 내는 카카오 성분이다. 설탕처럼 안락하고 편안함만 추구하자면 뭐 하러 여행을 떠나겠는가.


지루한 것보다는 고생이 낫다.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고집하는 이유다.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4년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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