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캬비크 _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후바시크에 위치한 성기 박물관 - 성기 수집광 지구르트 흐자타르손 씨 건립.
90여 종 261개 성기. 바다코끼리, 고래 등 동물과 처음으로 인간 성기도 전시.
2mm 쥐~ 1.7m 향유고래
기증받은 10개 넘는 사람의 생식기
2016년에 기록한 에버노트에서
몇 년 전에 기록한 노트에서 발견한 메모다. 읽고 있던 책에서 뻗어 나온 호기심 때문이거나 구상하고 있던 글을 위해 검색하다 나온 결과로 짐작된다. 시간이 꽤 지나 자세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 머무는 동안 그 기록 속 박물관이 마침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트를 기록할 당시에만 해도 아이슬란드가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동안 가볼 수 있는 나라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그 기록을 하고 꼭 6년이 지난 후, 2mm 밖에 안 되는 쥐의 성기도 1.7m나 되는 향유고래의 성기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짜 우리 들어가도 돼?
한창 성에 관심이 많을 사춘기 두 아들은 키득거리며 박물관에 들어섰다. 나는 기록의 놀라운 힘에 감탄하며 박물관을 천천히 돌았다. 후사비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어째서 레이캬비크에 있을까.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역사를 알게 되고야 의문이 풀렸다. 아이슬란드 성기박물관은 1997년 레이캬비크에 작은 규모로 개관했다가, 2004년에 후사비크로 옮겼다. 2011년에 인간 성기를 처음 전시하게 되었고, 박물관의 인기가 높아지자 2020년 레이캬비크로 다시 이전하며 박물관을 세 배로 확장했다. 내가 기록할 당시가 2016년이었으니 그때 박물관은 후사비크에 있었지만, 2022년에 아이슬란드를 여행한 나는 레이캬비크로 이전한 규모가 큰 박물관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정보를 찾고 기록할 당시만 해도 아이슬란드 성기박물관은 세계 유일의 성기박물관이었을지 모른다. 이제는 제주의 '성박물관' 등 세계 여기저기에 비슷한 콘셉트의 박물관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미 다른 지역의 성박물관을 관람한 후였기에, 아이슬란드 성기박물관 자체가 새롭게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정말 놀라고 감탄했던 건 성기 전시가 아니라, 기록의 놀라운 힘이었다.
"물론 이런 기록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들입니다. 사실 모든 기록이 그럴지 모르죠. 하지만 시시때때로 마음이 메말라갈 때, 열어볼 기록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중
2012년 12월 29일 에버노트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11년쯤 에버노트를 애용하다 노션으로 옮겨 탔다.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긴 노트 수는 대략 2만 5천 개쯤 된다. 물론 2만여 개의 노트가 모두 주술을 발휘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여행 직전에 출간되어 아이슬란드 여행에 동행했던 책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도 그렇게 기록한 메모 한 줄에서 출발한 책이었다.
2012년 2월, 여덟 번째 습작소설이자 처음으로 중편 길이의 소설을 시도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그림을 혼자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데, 그림이 테마라서 챕터마다 컬러를 선정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컬러마다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 소설에 등장했던 8가지 컬러가 바로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에 들어간 8가지 컬러다. 당시 소설을 쓰면서 '컬러를 테마로 독서 에세이를 쓰면 좋겠다'라고 짧게 메모해 두었는데, 꼬박 10년이 걸려 그 메모가 진짜 책이 되어 출간된 것이다.
이처럼 내가 남긴 기록 중 많은 문장이 주술적인 힘을 발휘해 실현되는 걸 종종 목격했다. 뭐라도 끼적이며 기록을 남기는 삶은 그래서 기록 없는 삶보다 설렌다. 이제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잘 만들어졌으니, 무엇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인지에 좀 더 신중해져도 좋을 것 같다. 내 미래를 그려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4년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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