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10
최근 AI 관련 책들을 몰아 읽다가, 뜻밖에도 인간의 불멸 욕망과 마주하게 되었다.
인공장기, 로봇공학, 나노기술—모두 인간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하고, 더 오래 유지하려는 도구들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20년 전 『특이점이 온다』에서,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고,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이 신체를 재설계하며,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흐려질 거라 예언했다. 그의 예측은 그때는 허황된 공상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전혀 낯설지 않다.
그의 정확한 예측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그의 건강 생활이다. 그는 매일 100알이 넘는 영양제를 삼킨다. (연간 11억 원 정도) 예언된 미래의 문 앞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다. 최근 출간된『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는,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 전망서라기보다 한 인간의 불멸을 향한 욕망 서사처럼 읽힌다.
불멸을 꿈꾸는 그의 몸부림을 비웃을 수 있을까? 솔직히 70이 넘은 커즈와일이 20년을 더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욕망을 폄하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원하는 건 불멸이 아니라 존엄한 죽음이지만,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면 그 생각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이브 헤롤드의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에는 인공심장을 둘러싼 한 장면이 있다. 심장이 점차 나빠지고, 손주는 막 태어났다. 삶의 마지막 기쁨은 그 아이의 웃음뿐이다. 그때 부작용도, 거부반응도 없는 혁신적인 인공심장이 등장한다면?
당신이라면 이식받을 것인가, 아니면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할 것인가?
당신이 아니라 사랑하는 배우자라면, 이식을 받도록 권유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하라고 조언할 것인가?
『먼저 온 미래』에서 장강명 작가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소중한 인간적 가치들의 붕괴라고 말했다. 그런 그도, 말미에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를 위해 AI가 하루라도 빨리 혁신적인 치료법을 내놓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커즈와일의 불멸 욕망을 조롱하던 이도, 사랑을 지키고 싶은 절실함을 감히 폄하할 수 없다.
사실 작가란 존재는 언제나 불멸을 꿈꾸는 자다.
시간을 이길 수는 없지만, 시간에 새겨질 수는 있다.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단지 기록하는 일뿐.
– 제임스 설터
불멸을 위해 매일 100알의 영양제를 삼키는 일이 우스워 보여도,
명작 한 편을 위해 문장에 생을 태우는 작가의 행위는 그보다 덜할까?
AI는 몇 초면 작가들이 몇 달에서 길게는 수년을 고민해 내놓을 만한 한 권의 책을 뚝딱 써낼 것이다.
그런 날은 멀지 않고 이미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글 쓰는 이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은 텍스트 사이에서, 내 문장 하나는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덧,
장강명 작가가 내가 『먼저 온 미래』에 대해 쓴 리뷰를 직접 자신의 페북에 공유해 주었다. 『먼저 온 미래』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좋은 책이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어둡고 두려웠지만, 작가의 말에서 장강명 작가가 시한부 진단을 받은 아내 김새섬 대표를 위해 기도하고 독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말이 특히 좋았다. AI가 인간의 가치를 부수는 미래가 온다고 해도, 인간은 이렇게 또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아서...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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