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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실패'만은 절대 하지 않기로 했다

100일 챌린지_Day 11

by 윤소희

서울대, KBS 아나운서, 시카고대 MBA, 글로벌 컨설팅펌… 이후, 나는 실패전문가가 되었다.


며칠 전만 해도 내 책이 세상에 나올 줄 알았다. 그것도 큰 출판사에서 첫 책을 내다니. 몇 달간의 원고 작업, 편집자의 긍정적인 연락, 그리고 그 사이의 짧고 달콤한 꿈. 그러나 마케팅 부서의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인지도가 낮아 어렵겠습니다.”

그 말은 돌처럼 단단했고, 내 가슴에 곧장 가라앉았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글을 쓰면서 겪은 수많은 실패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며칠 동안 노트북 앞에 앉지 못했다. 새하얀 화면이 공포스럽게 느껴졌고,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2.png 어쩌면 글쓰기란, 수많은 실패를 견디는 일일지 모른다.


쓰는 인간으로 살아온 지 10년이 넘었다. 노션(예전엔 에버노트를 썼다) 속에는 끼적인 메모들, 길을 걷다 주운 단어들, 새벽에 쏟아져 나온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시작은 했지만 끝맺지 못한 글들, 방향을 잃은 문장들, 미완의 세계가 빼곡하다. 완성된 작품은 손에 꼽지만, 기록을 멈춘 적은 거의 없다. 어쩌면 글쓰기란, 수많은 실패를 견디는 일일지 모른다.


몇 해 전, 우연히 ‘3가지 실패’ 이야기를 읽었다.

첫 번째 실패는 하기 싫은 일에서 성공하는 것 — 성취는 있지만, 기쁨은 없다.

두 번째 실패는 하고 싶은 일에서 실패하는 것 — 멈추지만 않으면, 이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실험이 된다.

세 번째 실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 실패도 성공도 없이, 인생을 허비하는 가장 치명적인 상태다.


나는 30대 중반까지 첫 번째 실패를 반복했다. 서울대, KBS 아나운서, 시카고대학교 MBA, Bain & Company 컨설턴트. 이력서에 줄줄이 늘어선 타이틀은 남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내 마음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화려했지만 공허했고, 부유했지만 목이 말랐다. 3~5년을 못 채우고 흘러 다녔다.


30대 후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책을 내는 데 6년, 원하던 소설가 등단까지는 13년이 걸렸다. 그 사이,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에서 수없이 떨어졌다. 이상했다. 끈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늘 새로운 걸 찾아 헤매던 내가 수없는 실패에 부딪히면서도 글을 계속 쓰고 있었다. 실패가 쌓여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남았다. 돌아보면 지난 10여 년은 내게 '두 번째 실패'의 시간이었다.


3.png


모두가 이야기하듯, 나도 안다. 세 번째 실패가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요즘 나는 두 번째 실패와 세 번째 실패의 경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 실패가 두려워 그냥 말아버릴까 하는 마음. 그 무거운 공백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100일 챌린지는, 세 번째 실패로 미끄러져 가는 나를 붙들어, 다시 두 번째 실패로 이끄는 최소한의 장치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이다. 다시 수없이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의 이름이 ‘멈추지 않음’이길 바란다. 그것만이 내가 쓰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WechatIMG9833.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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