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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는 얼굴이 없다

100일 챌린지_Day 12

by 윤소희

알람이 울리기 직전, 방 안에는 한낮의 그림자처럼 묵직한 어둠이 가라앉아 있었다. 공기는 오랫동안 창문을 닫아두어 미묘하게 눅눅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서늘함이 서서히 사라졌다. 나는 반쯤 깬 채로, 몸을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에 두고 있었다. 발끝은 아직 저편의 세계에 걸쳐 있었고, 머리는 서서히 이쪽으로 기울어오고 있었다. 그 상태는 마치 얇은 안개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았다. 기류 하나만 달라져도 금세 방향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하고도 달콤한 부유감이었다.


손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부드럽고 얇은 감촉, 그러나 중심이 단단하게 살아 있는 느낌. 나는 그것이 귀한 것임을 직감했다. 두 손으로 감싸 쥐었을 때, 비로소 그것이 길고 가느다란 족자임을 알았다. 길이는 거의 내 키만큼 길었고, 종이는 화선지처럼 연약하면서도 거친 표면을 품고 있었다. 빛은 없었지만, 그 안에 적힌 글씨는 희미하게 스스로를 발광하듯 드러났다. 획은 똑바로 서 있지 않고,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굳이 힘을 주어 그린 직선 대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곡선들이었다. 그 글씨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누군가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4.png 나는 그것이 귀한 것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족자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하얀 마늘 조각들이었다. 껍질이 완전히 벗겨진, 순백의 조각들이 둥글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채, 족자를 감싸고 있었다. 그것들은 성곽처럼 촘촘하게 줄지어 있었지만, 차갑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배치는 어머니가 병든 자식의 머리맡에 마늘을 두르듯, 보호와 정화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마치 그 자체로 무언가를 지키는 방패인 듯, 족자를 중심으로 고요한 빛의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 족자를 내게 건넨 이는, 내가 오래도록 존경해 온 작가였다. 그의 손에는 세월이 새겨져 있었지만, 눈빛은 맑았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이것을 가지고 글을 쓰라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조용하고도 또렷하게 설명했다. 목소리는 강물처럼 느릿하게 흘렀다. 나는 그 말들을 한 글자라도 놓칠까 두려워, 마음속에 서둘러 새겨 넣었다. 그의 말은 단순한 글쓰기 지침이 아니라, 문장을 세우는 뼈대와 그 위에 흐르는 숨결까지 함께 전수해 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당장이라도 노트북 앞에 달려가 하얀 종이를 메우고 싶었다. 손끝이 근질거렸고, 가슴은 이미 문장들로 넘쳐흘렀다.


이번만큼은 모든 것을 기억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곧장 써 내려가, 이 생의 가장 순도 높은 문장을 완성하리라 확신했다.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한 단어라도 더, 한 장면이라도 더 가슴 속에 눌러 담았다.


하지만… 창밖의 어둠이 미세하게 옅어지는 순간, 그것들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깜박이며 꺼졌다. 손 안에서 족자가 먼지처럼 부서졌다. 마늘의 둥근 조각들도 사라졌고, 작가의 얼굴과 목소리마저 흐릿해졌다. 눈을 완전히 떴을 때, 내 손에는 단 한 줄만이 남아 있었다.


슬픔에는 얼굴이 없다.


그 문장을 붙잡은 채로, 나는 공허 속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잃었는지 알 수 없으니, 슬픔조차 완전히 애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분노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잡을 수 없는 것을 잠시 품었던 그 순간이 여전히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 모노노아와레*의 빛과 닮아 있었다. 찰나에 피어났다가, 그 다음 순간에는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버리는 벚꽃처럼. 덧없음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역설 속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 문장을 바라봤다.


3.png 덧없음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역설 속에서


어쩌면 그날 내가 손에 쥔 것은, 한 생애 동안 작가가 지고 가야 할 ‘얼굴 없는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무늬도 형체도 없이, 그러나 묘하게 분명한 무게를 지닌 그림자였다. 나는 그것을 잠시 품었고, 이제는 잃었다. 그리고 그 상실 속에서, 이상하게도 완전한 한 편의 문장이 완성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2.png 한 생애 동안 작가가 지고 가야 할 ‘얼굴 없는 슬픔’




*모노노 아와레(일본어: 物もの哀あわ)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왕조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학적 미적 개념, 미의식의 하나이다. 직역 또는 의역하여 사물의 슬픔, 비애의 정등의 의미를 갖는다. 보고 듣고 만지는 사물에 의해 촉발되는 정서와 애수, 일상과 유리된 사물 및 사상과 접했을 때, 마음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적막하고 쓸쓸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슬픈 감정등을 말한다. 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겐지모노가타리를 언급하면서 처음으로 주창하여 겐지 이야기를 모노노아와레의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Source: 위키백과)




WechatIMG9832.jpg 윤소희 작가_천지에서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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