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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ON과 연애편지 - 문과생의 AI 생존기

100일 챌린지_Day 14

by 윤소희

나는 AI가 무섭다.

숫자와 코드, 복잡한 기호들—그 앞에 서면 숨이 막힌다. ‘이건 내 세계가 아니야’라며 등을 돌렸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다. 내가 운영하는 단톡방(‘책과 함께’,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에서 몇몇 회원이 AI 관련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피해 갈 수도,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을 이겼다. 그 순간, 나는 생각지도 못한 길에 발을 들였다.


Weixin Image_20250812043747_41.jpg AI 책탑


일주일 만에 10여 권의 AI 책을 읽었다. 기술 백서, 실전 안내서, 국가 전략서까지. 처음엔 암호 해독 같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내 안에 작은 불빛이 켜졌다. “아, 이렇게 연결되는 거구나.” 결국 나는, 100일 챌린지와 AI 수업, 그 낯선 세계로 몸을 던졌다.


첫 강의부터 외계어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러나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글을 처음 배울 때 문법과 구두점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곧 그것이 ‘지도’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 낯선 언어도 언젠가 나의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


4강까지 연달아 들었다. 그리고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버튼 하나로 남편에게 날씨 정보를 불러와, 그 데이터를 담은 연애편지를 이메일로 발송하는 AI 에이전트를 만들었다. 개발자가 보면 웃을 수준이지만, 나로서는 처음 만든 챗봇이었다. “아, 나도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Weixin Image_20250812044346_81.png 사람의 언어도 기계의 언어도 문법이 필요하고, 둘 다 정확성을 요구한다


API 호출, n8n, JSON… 처음엔 차갑고 딱딱한 기호의 묶음 같았던 JSON이, 곧 ‘기계가 이해하는 문장’ 임을 알게 됐다. 사람의 언어도 기계의 언어도 문법이 필요하고, 둘 다 정확성을 요구한다. 쉼표 하나만 빠져도 독자가 숨이 차거나, 프로그램이 에러를 낸다. 모호한 문장과 불필요한 에두름은 독자를 길 잃게 한다는 점에서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


Weixin Image_20250812044351_80.png 생애 첫 챗봇


AI의 언어를 배우고, 프롬프트로 코드를 만드는 일은 글쓰기와 본질적으로 닮아 있었다. 워크플로우를 설계하는 과정은 소설의 플롯을 짜는 일과 비슷했다. 둘 다 보이지 않는 독자와의 대화를 준비하는 설계도다.


낯선 외국어를 배우듯 기계와 대화하는 법을 익히면서, 나는 독자와 대화하는 법을 새삼 돌아보게 됐다. 단어 하나, 기호 하나, 구조 하나가 메시지의 운명을 바꾼다. 익숙한 언어에 기대 살아온 나에게, 이 낯선 언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었다.


100일 챌린지도, AI 수업도—저지르기 잘했다.




Weixin Image_20250811052709_74.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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