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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99%, 울음 1%- 무의미의 축제

100일 챌린지_Day 13

by 윤소희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무심코 던진 말이 한동안 내 가슴을 눌렀다.

“20년쯤 빨리 휙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삶이 너무 지겹고 무료해.

옆에 있던 또 다른 지인이 얼른 이것저것 해보라며 권했다. 그 말들은 허공에 흩날려 사라지는 먼지 같았다. 내가 그의 한숨을 무겁게 받아들인 건, 나 역시 곧 아이들을 떠나보낸 후 빈 둥지를 마주할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사라질 때, ‘그다음의 삶’에 대해 묻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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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헤어지기 전 나무 그늘이 깊은 길을 걷다 그가 문득 내게 물었다.

“혹시 매미가 오래 땅속에 있다가, 땅 위에서는 잠깐 울다 간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나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예전에 매미를 소재로 글을 쓴 적이 있었으니까.


매미는 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3년에서 17년을 땅속에서 보낸다. 그 후 땅 위로 올라와 3~6주 반짝 살아간다. 그 짧은 시간, 수컷은 짝을 찾기 위해 목청껏 운다. 그 울음은 몹시 시끄럽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터무니없이 짧다. 평생의 99%는 기다림, 단 1%는 울음. 그 1%는 모든 것을 건 찰나의 축제다.


그때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책《무의미의 축제》가 떠올랐다. 그는 말년에 이렇게 썼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이에요."

그걸 무의미라 부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 그걸 사랑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했다. 하찮은 삶에서 기쁨을 길어 올리라고 '축제'라는 단어를 썼는지 모르겠다.


3.png 무의미의 축제


나에게 글쓰기가 그랬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나 자신이 하찮게만 보일 때,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차갑게 식어 있던 그 시절. 글쓰기는 하찮음 속에서 빛을 길어 올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순간들 덕분에, 나는 매미의 울음을 ‘소음’이 아니라 ‘기다림 끝의 찰나’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림은 일상, 울음은 찰나의 축제인 것을.

윤소희 <여백을 채우는 사랑> 중 ‘매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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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여백을 채우는 사랑> 중 ‘매미’


글을 쓴다고 삶이 눈에 띄게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바라보는 눈은 변한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에도 시선이 머물 수 있고, 그 장면에서 문장을 길어 올린다. 하찮고 작아 보이는 그 순간들이, 내 삶을 조용히 축제로 만든다.



WechatIMG9838.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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