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9
한밤중,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려다 낯선 통증에 잠이 깼다. 귀 앞쪽 어딘가가 부어 있었다. 살이 안에서 차오르듯 눌리는 압력. 턱이 탁 걸린 듯, 입을 여는 일조차 불편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하선염의 감각, 과음한 다음날 찾아오던 통증이었다. 술을 끊은 지도 꽤 되었건만, 다시 이 통증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왼쪽 귀엔 며칠 전 외이도염 진단을 받고 항생제를 복용 중이었는데, 이번엔 반대편이다. 귀에서 시작한 고통은 슬며시 마음속으로 기어들어왔다.
건강할 때 나는 내게 ‘귀’가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았다. 침샘이 어디 붙어 있는지조차 몰랐다.
지금은 모든 감각이 그 부위로 쏠린다. 마치 그 조그만 부위가 나의 전부인 듯, 나의 우주인 듯 느껴진다.
통증은 모든 것을 제치고 주의를 독차지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고통에 주의를 주지 않으면 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 통증은 빠르다. 초속 2미터의 속도로 뇌로 달려가 나를 호출한다. 내가 또렷이 느끼는 이 감각보다 빠른 언어가, 과연 있을까?
알람보다 먼저 몸을 일으켰다. 좌우가 미세하게 다른 얼굴로 거울 앞에 섰다. 낯설다. 이 작은 비대칭이 나를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이 새벽, 병원 문은 닫혀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책상 앞에 앉는 것이다.
몸이 불편한 날, 글쓰기는 더 버겁다. 반대로 바로 그런 날, 나는 더 쓰고 싶어진다. 고통은 군더더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나를 ‘지금, 여기’에 정박시킨다. 귀와 턱을 맴도는 그 고통처럼, 나는 오늘 유난히 선명하다.
침샘이 부풀며 밀려온 이 낯선 감각은 곧 문장이 되었다. 언어는 충만 속에서가 아니라, 결핍의 가장자리에서 솟는다. 라캉의 말처럼, 몸이 불완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말하고 싶어진다. 통증은 표현하고픈 충동을 데려오고, 이해받고 싶은 욕망을 끌어올린다.
‘침샘 주위의 붓기’, ‘찌릿한 통증’, ‘불쾌한 이물감’ 같은 단어들을 손끝에 붙잡다 보면, 하나의 세계가 조심스레 열린다. 몸의 언어를 번역하는 이 고요한 노동 속에서, 나는 나를 더 세밀히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우울증에 잠겨 아이에게 무심하던 엄마가, 아이가 아파서 자지러지게 울자 그제야 아이의 존재를 자각하고 손을 뻗는 모습처럼. 통증은, 그렇게 잊고 있던 나의 존재를, 나의 중심을 일깨운다.
어쩌면 통증은, 그동안 내가 쓰지 못했던 문장들을 데려오는 방식일지 모른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쓰게 만든다. 쓰고 나니, 조금 덜 아픈 것 같다.
문장이 약이 되어 병을 고치지는 못하겠지만, 병은 문장을 데려와 나를 고친다.
고통은 지나가고, 문장은 남는다.
나는 오늘도 문장을 따라, 조금씩 나를 회복해 간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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