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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을 무기로 아우성치는 글에 속지 않기

100일 챌린지_Day 19

by 윤소희

어떤 것들은 내 눈을 가리고, 쉽게 무릎을 꿇린다. 젖은 종이에 스며드는 잉크처럼, 나는 약한 곳에 먼저 번졌다. 고졸이라서, 못생겨서, 키가 작아서, 백수라서, 고아라서, 가난해서, 불구라서, 전과자라서… 세상에 내밀면 주저할 법한 표지들. 그 표지를 내밀며 불안하게 웃을 때, 나는 그 웃음 속으로 성급히 뛰어들었다. 앞뒤를 헤아리기 전에, 마음부터 풀렸다.


젊을 땐 그 연민을 사랑으로 오해했다. 상대를 살리려다 더 깊이 가라앉은 연애가 몇 번 있었다. 연민은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제때 손을 떼지 않으면 독이 된다. 그걸 알기에는, 너무 어렸고 서툴렀다. 초고만 쓰고 끝내는 사람이었으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연민과 사랑을 혼동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방심이 문제였다. 어느 날, 새 원고의 첫 문장처럼 다가온 인물. 만난 지 오래지 않아 자신의 치부를 담담히 꺼내놓는 사람. 나는 그걸 ‘정직’이라 읽었고, ‘같이 가자’는 한 줄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가 쓰는 문장은 곧 내 문장이 되었고, 그의 바다는 내 바다였다. 그의 바다는 유난히 얕았지만, 나는 그것이 깊다고 믿었다. 같은 배를 탄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의 문장은 수정되었다. 붉은 펜으로 무참히 지워졌다. 함께 쌓은 줄 알았던 성은 모래성이었고, 높은 파도 한 번에 사라졌다. 남은 건 빈 껍데기뿐이었다.

한때 재미있게 쓰다 멈춘 소설들이 있다. 아무리 많은 분량을 쌓아도 끝을 맺지 못하면, 그건 소설이 아니다. 어쩌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문장도, 사람도, 신뢰가 빠져나가면 무게를 잃는다. 허공에 붕 뜬 글자를 붙잡으려 애쓰다 보면, 손끝이 허방을 딛는다. 그의 버릇은, 끝까지 마침표를 찍지 않고 엉뚱한 문장을 끼워 넣는 것이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끝맺음이다. 약속은 던지는 게 아니라 회수하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과 두꺼운 분량이 있어도,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원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삶도 그렇다. 글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초고만 보여준다. 허점이 많은 초고는 솔직해 보인다. 하지만 초고만으로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이슬아 작가의 말처럼, 솔직함과 글의 완성도는 상관이 없다.


솔직함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는 글에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다. 솔직한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지루해서였다. 위험하기도 했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중


누군가가 마침표를 찍지 않은 문장에, 나는 마침표를 빌려 쓴다.

삶에도,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원칙은 비슷하다.

문장에 치부를 드러낸다고 해서, 그 문장을 쓴 이가 정직한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말 것.

솔직함을 무기로 아우성치는 글에 속지 않고, 누군가의 초고를 읽더라도 결말은 함부로 믿지 말 것.

해피 엔드든 새드 엔드든, 시작한 글에는 반드시 마침표를 찍을 것.


내 문장은, 반드시 끝까지 쓴다.


2.png 시작한 글에는 반드시 마침표를 찍을 것




Weixin Image_20250814091521_401.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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