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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달걀은 마음의 결함이 아니라,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100일 챌린지_Day 67

by 윤소희

추석 연휴를 앞두고 택배 상자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익숙한 이름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두 개의 상자에는 아무 이름도 없었다. 수취인도, 발신인도. 이름 없는 선물은 언제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손길은 분명 있었는데 그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사람의 상상은 금세 어두워진다.


칼날을 조심스레 포장 틈에 밀어 넣었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 비린내가 퍼졌다. 썩은 단백질의 묵직한 냄새, 눅눅한 종이 포장재의 감촉. 안에는 달걀이 들어 있었다. 한 상자는 날달걀, 다른 한 상자는 삶은 달걀. 깨진 껍질 사이로 미끈한 오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오물을 피하며, 멀쩡한 달걀을 하나씩 골라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길었다. 냄새는 점점 짙어지고, 하루 종일 손끝에서 비린내가 났다.


포장을 정리하다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몇 해째 자신이 키운 유기농 달걀을 수시로 보내주던 지인. 최근에는 연락이 뜸했다. 이사한 후에 새 주소를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그가 여러 경로로 수소문해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악취 속에서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2.png ‘보낸 사람의 정성’과 ‘상한 달걀의 냄새’를 분리해 받아들이는 일


손상된 달걀은 마음의 결함이 아니라, 마음이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었다. 그 여정이 다만 조금 험했을 뿐이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상자 앞에 서 있었다. ‘보낸 사람의 정성’과 ‘상한 달걀의 냄새’를 분리해 받아들이는 일,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글 역시 진심을 담았다고 해서 그 진심이 손상되지 않고 항상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문장은 수없이 부딪히고, 뒤집히고, 상자 속 달걀처럼 흔들리며 도착한다. 어떤 문장은 깨지고, 어떤 문장은 비린내를 풍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안의 마음까지 썩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내 글이 누군가에게 오해받거나 의도와 다르게 읽힐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상한 달걀 비린내가 퍼지는 것 같다. 부끄럽고, 무력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냄새 속에서도 남은 멀쩡한 달걀을 떠올릴 수 있다. 완전히 깨진 줄 알았던 문장 속에도, 여전히 전해지는 온전한 진심이 있다는 걸.


글은 완벽하게 도착하지 않는다. 선물도,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얼마나 멀리 던져졌느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남았느냐가 아닐까. 이름 없는 상자가 문 앞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을까. 흔들리고,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결국 도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고마웠다.


생각해 보면, 선물의 본질은 무언가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 그 마음이 도착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데 있다. 글도 그렇다. 때로는 비린내 나고, 형태가 일그러져도, 그 안의 온기를 지키는 일 — 그것이 우리가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다.




Weixin Image_2025-10-02_165413_883.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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