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68
누군가 나를 가장 먼저 찾아준 게, 얼마만일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의 질서 속으로 들어온 이후로 나는 언제나 ‘나중’이었다. 식탁의 자리도, 하루의 시간표도, 대화의 순서도 늘 같았다. 아이 먼저, 남편 먼저, 그리고 나는 마지막. 자연스러웠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 여겼으니까.
해외에 오래 살다 보면,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일은 없다. 그래도 추석이니, 식구들이 모여 앉아 영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친정 엄마와 시아버지께는 매주 주말마다 전화를 드리지만, 친정 아빠께는 명절이나 생신 때만 전화를 드린다. 아빠에게 새 가족이 생긴 뒤로, 그 경계를 존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마음은 연락의 횟수가 아니라, 관계의 품위로 드러난다고 믿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 때면 언제나 순서가 있다. 먼저 아이들, 그다음 남편, 마지막이 나. 손주들이 화면 속에 얼굴을 내밀면 부모의 표정이 가장 환하다. 그런데 아빠에게만은 예외였다. 아이들이 먼저 인사를 해도, 아빠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엄마는?”
그 세 글자.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 손주들이 웃으며 얘기하는데도, 아빠의 시선은 그 아이들 뒤쪽, 보이지 않는 나를 향해 있었다. 연락은 가장 드문데, 이상하게 아빠만은 나를 먼저 찾는다.
이번에는 그 점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아마 요즘 내 마음의 음이 한 옥타브쯤 내려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깨어났다. 순간 울음이 밀려왔다.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눈물이 화면을 번지게 하긴 싫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름이 먼저 불릴 때 비로소 생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그 부름은 사랑의 증거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한동안 나는 세상이 정한 우선순위에 맞춰 살아왔다. 나중에, 나중에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이름은 문장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글을 쓸 때조차, 독자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기대를 먼저 고민했다. 문장은 점점 길어졌고, 그 안의 나는 점점 작아졌다.
솔직히 아빠가 내게 특별히 잘해준 기억은 많지 않다. 하지만 "엄마는?"하고 아이들보다 나를 먼저 찾아주었을 때, 늘 뒤로 밀려나 있던 나는 1순위가 되었다. 존재의 서열이 뒤집어지는 경험.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던 시간 속에서, 문장만은 아빠처럼 나를 먼저 불러주었다. 그 부름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어쩌면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질서가 나를 뒤로 밀어낼 때마다, 문장은 묵묵히 나를 앞으로 세웠다. 타인의 시간 속에서 잊힌 이름이, 글 속에서는 다시 불렸다. 글을 쓸 때만큼은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잠잠해지고, 가장 안쪽의 내가 먼저 불리는 자리로 돌아간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