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70
치매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어느 날 장미 앞에 멈췄다. 장미 향이 사라진 순간,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대니얼 깁스. 그는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인간의 기억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뇌과학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그리고 자신의 병이 어떻게 자신을 삼켜가는지를, 연구하듯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병에 매혹되었다고 말했다. 무너져가는 자기 자신을 냉정히 바라보며, 그것을 끝까지 이해하고자 했다. 더 놀라운 건, 인지 손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이상을 감지했다는 사실이다. 장미의 향이 사라졌을 때, 그는 그것이 단순한 감각의 결핍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사라지기 시작한 신호’ 임을 알아차렸다.
언젠가부터 문장이 너무 매끄럽게 흘러가고, 단어는 놀라움을 잃는다. 글이 병들기 시작한 신호다. 몹시 예쁘지만 향이 나지 않는 장미처럼.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기미’를 알아채는 감각이다.
깁스의 뇌 영상 속 증거가 모두 알츠하이머병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그의 인지 검사 결과는 여전히 멀쩡했다. 그는 병의 그림자를 일찍 알아차렸고, 그 덕분에 뇌가 망가져가는데도 꽤 오래 정신적 삶을 보존했다. 그 힘을 ‘인지예비능’이라 부른다. 뇌의 주 전원이 고장 났을 때, 다른 신경 경로를 작동시키거나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 예비 발전기를 돌리는 능력이다.
완전히 사라지거나 망가지기 전에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알츠하이머 환자도, 작가도 희망이 있다. 손상 자체는 막을 수 없다 해도 그것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낼 수는 있다. 소설이 막히면 일기를 쓰고, 일기가 막히면 시를 쓴다. 언어가 마비될 때, 다른 감각이 회로를 대신한다. 나는 그것을 믿기에, 100일 챌린지라는 이름을 걸고 매일 새벽 한 편의 글을 쓴다. 잃어버린 연결을 복구하는 내 나름의 인지예비능 개발법이다.
깁스가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깊이 울렸다. 읽기는 외부의 언어를 들여오는 행위지만, 쓰기는 내면의 불빛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그 빛은 오래 남는다.
어쩌면 글쓰기는 인간이 가진 마지막 인지예비능일지 모른다.
내가 내 이름을 잊는다 해도, 쓰고 있다면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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