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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계속할 수 있는가

100일 챌린지_Day 71

by 윤소희

40여 일 만이었다. 러닝화를 다시 꺼내 신으며 손목에 시계를 찼다. 그런데 운동 앱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폰에는 여전히 있었지만, 워치 화면에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첫날은 옆에서 함께 달린 남편이 내 기록을 대신 알려주었다. 속도, 거리, 심박수 — 평소처럼 숫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내 몸의 감각이 낯설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 그것이 생각보다 큰 구멍을 냈다.


이틀 뒤 새로운 러닝 앱을 깔았다. 그러나 숫자는 여전히 0이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거리와 속도, 심박수는 멈춰 있었다. 나는 분명 달리고 있었지만, 기록 속의 나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의 달리기는 이상하게 공허했다. 의미가 달아나버린 달리기였다. 재미가 없었다. 순간 깨달았다. 글쓰기에 재미를 잃은 것도 이와 비슷한 감각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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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의 골짜기 속에서도 내 안의 미세한 박동은 계속된다. 단지 측정되지만 않을 뿐.


책이 출간되고, 얼마간의 반응이 지나간 후 찾아온 공허. 눈에 보이는 지표들이 차갑게 식어갈 때, 그동안 쌓아 올린 시간이나 노력마저 ‘0’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쓰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이 된 듯한 감각. ‘왜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찾아왔다.


달리기의 본질이 숫자에 있지 않듯, 글쓰기의 본질도 성과에 있지 않다. 문장이 나를 데려가고, 문장이 나를 되돌리는 그 리듬 속에서만 나는 살아 있다. 기록되지 않아도 나는 달리고 있었고, 수치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 안의 문장은 움직이고 있다.


100일 챌린지는 스마트워치 대신 심장의 박동으로 시간을 재는 일이다. 누가 보지 않아도, 내가 듣는 숨소리로 하루를 증명하는 일이다.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잃었던 것은 의욕이 아니라 의미의 좌표, 보이지 않는 리듬을 믿는 능력이었다. 기록되지 않는 날에도 나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천천히. 무기력의 골짜기 속에서도 내 안의 미세한 박동은 계속된다. 단지 측정되지만 않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나는 계속할 수 있는가?

오늘도 그 질문을 품고, 나는 다시 달린다.

그리고, 쓴다.




WechatIMG9451.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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