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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창 너머, 어둠을 향해 말을 건다

100일 챌린지_Day 76

by 윤소희

코로나 이전, 나는 베이징에서 상하이에 사는 지인에게 휴대폰 영상통화로 성경 수업을 한 적 있다. 매주 한 번, 24주 동안. 노트북 화면을 비출 방법이 없어 휴대폰을 들어 노트북 쪽으로 기울이고, 다시 내 얼굴로 돌려가며 진행하던 어설픈 수업. 나는 그때, 세상이 곧 ‘화면 속의 세계’로 들어가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화면 속에 살고 있다.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고, 미세한 표정의 떨림도 전해지지 않는다. 때로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 캄캄한 적막 앞에 나는 종종 고립을 느낀다. 불 꺼진 창문, 닫힌 마이크, 응답 없는 공백. 지금, 나는 혼자 떠들고 있는 걸까.


3.png 불 꺼진 창문, 닫힌 마이크, 응답 없는 공백. 지금, 나는 혼자 떠들고 있는 걸까.


어쩌면 글쓰기란 이 풍경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독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어둠을 향해 말을 건다. 언어는 언제나 공허를 통과해야만 닿을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 들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꺼진 창은 침묵과 단절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언어의 탄생지기도 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적막의 공간이야말로 문장이 절실한 곳이니까.


어느 날이었다. 수업 중 한 수강생의 화면이 희미하게 켜졌다.

“제가 체력이 달려서 누워서 들을게요. 양해해 주세요.”

암 투병 중이던 그의 한 마디가 내 가슴을 흔들었다. 화면 속 흐릿한 불빛, 비스듬히 누워 있는 얼굴,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용기. 꺼진 화면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 말을 꺼내기 전,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일 수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꺼진 화면을 보면, 그 화면 너머를 상상한다. 그곳엔 아직 말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언어가 태어나길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오늘도 나는 꺼진 화면 앞에 앉아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누구에게 닿을지 모를 문장을 쓴다. 나의 언어는 기도와 닮았다. 당장은 공중으로 흩어질지라도,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에 닿을 것을 믿는다.


꺼진 창 너머 어둠 속에 있는 당신에게,

나는 여전히 말을 건다.



Weixin Image_20250909055023_282.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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