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처가 권리가 되고, 불운이 면죄부가 된다

100일 챌린지_Day 77

by 윤소희

역대하를 읽다 보면, 왕들의 몰락이 늘 같은 패턴을 따른다.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그들은 모두 선한 왕으로 기록되지만, 결국 비참하게 끝났다. 형통할수록 교만이 자라났고, 축복이 서서히 그들을 갉아먹었다. 형통함은 교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묵상을 하다 문득, 다른 쪽 얼굴이 보였다. 형통은커녕 하는 일마다 어그러지는 사람의 교만은 어디서 오는가. 실패와 불운이 늘 겸손을 낳는 건 아니다. 나는 가난하니까, 몸이 아프니까, 외롭고 힘드니까 — 그러니 누군가 나를 더 이해하고, 더 배려해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이 쌓이면, 상처가 오히려 권리가 되고, 불운이 종종 면죄부가 된다.


수동공격성은 폭력의 반대편에 서 있는 척하지만, 실은 세련된 형태의 폭력이다. 직접적으로 화를 내지 않고, 대신 침묵으로 상대를 벌한다. 모른 척하고, 늦게 답하고, 일을 대충 하거나 몸이 아프다고 눕는다. 그 모든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처럼 포장된다. 상대는 반격할 근거를 잃고, 죄책감만 남는다. 폭력은 상처를 남기지만, 수동공격성은 관계의 근육을 서서히 굳게 한다.


오래도록 그런 사람 옆에서 시달렸다. 내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며칠이고 앓아누웠다. 나는 끝없이 내 잘못을 찾아 헤매며, 상대의 감정에 인질이 되었다. 내가 받은 화살을 되돌려줄 길 없어 스스로에게 꽂았다. 폭력보다 조용하지만 훨씬 깊게 스며드는 상처였다.


글을 쓰며 나는 그 어둠과 마주했다. 한동안 나는 쓰지 않음으로써 나를 벌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라는 가식을 벗겨내고, 마침내 “나는 화가 났다”, “나는 외롭다”, “나는 쓰고 싶지 않다”라고 정확히 적는다. 감정은 이름을 얻는 순간, 나를 파괴할 힘을 잃는다.


형통할 때나 불운할 때나, 교만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 그림자는 외향적으로 드러나면 오만이 되고, 내향적으로는 수동공격성이 된다. 둘은 다른 얼굴로 같은 진실을 가린다. 모두 나와 타인을 병들게 한다.


오늘도 나는 나의 화, 슬픔, 게으름을 정확히 적는다. 상처에 면죄부를 주지 않고, 상처를 권력으로 쓰지 않기 위해 쓴다. 분노를 감추지 않고, 침묵의 복수를 문장으로 해체한다. 글을 쓰며 내 감정의 무기를 해제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회복한다.


오늘 하루치의 문장으로, 오늘의 품위를 지킨다.




Weixin Image_20251016043703_514.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