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75
가끔 생각한다. 전부를 걸지 않았다면, 나는 덜 다치고 덜 아팠을까. 나는 늘 전부를 걸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전부를 걸곤 했다. All or None. 일도, 사랑도, 믿음도. 조금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끝까지 가야만 마음이 놓였다.
방송국을 떠날 때도 그랬다. 두 달만 더 기다려 휴직하라는 수많은 이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대부분 그 결정이 무모하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삶 전체를 건 일이었다. 비장한 선택은 언제나 나를 외롭게 했고, 지독한 고통으로 이어졌지만, 그 외로움과 고통이 나를 단단하게 세웠다.
중국으로 건너온 것도 그랬다. 대학 시절 어학연수 때 길거리 폭행을 당한 후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곳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왔다. 이방인으로 살아온 지난 20년은, 매 순간이 작은 전쟁이자 새로운 출발이었다. 돌이켜보면, 전부를 잃은 순간마다 다른 전부를 얻었다. 사랑과 일, 실패와 회복. 모든 것이 크고 또 작았다. 그 둘의 차이는 사라지고, 결국 하나로 수렴했다.
“모든 행동은 똑같이 크고 작다.”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중
‘전부를 건다’는 건 극적인 결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매일의 사소한 순간마다,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새벽 알람을 끄고 다시 눕지 않기로 한 3초, 바쁜 날에도 아침 식탁에서 성경을 펼치기로 한 찰나, 아무도 보지 않는 글 한 편을 끝까지 완성하는 시간.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 내가 된다. 니체의 말처럼, 모든 행동은 똑같이 크고 또 작다.
요즘은 훨씬 더 사소한 일에 전부를 건다. 식사를 천천히 하기 위해 씹는 횟수를 세고, 세탁기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옷 한 벌씩 정성을 다해 넣는다. 누구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인생을 통째로 맡기는 의식이다. 그렇게 살아갈 때, 시간은 더디게 흐르지만 내 안의 존재는 또렷해진다.
전부를 거는 삶은 위험하다. 하지만 조금 남겨두는 삶은 공허하다. 상처와 실패가 삶의 무늬를 완성시킨다. 완전히 부서지지 않으려면,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전부를 걸었기에 후회는 있어도, 미련은 없다.
75일째 이어가는 100일 챌린지 글쓰기 역시 아무 이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라를 구하는 일만큼이나 크고 또 작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내 전부가 걸려 있다.
오늘도 나는 작은 일 하나에 전부를 건다. 이 한 문장, 이 한 호흡에 내 목숨이 달려있는 것처럼. 모든 행동은 똑같이 크고 또 작다. 글쓰기도, 사랑도, 믿음도. 아직 끝나지 않은 내 삶의 춤을 추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전부를 건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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