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74
3년간 벽돌책을 깨던 독서 챌린지가, 올해부터 '고전 함께 읽기'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신간의 유혹에 밀려 미루기만 하던 고전들을 제대로 맛보고 있다. 최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함께 읽었다. 그의 문장은 무겁고 날카로웠으며, 인간 내면의 심연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함께 읽던 한 분은 그 강렬함에 길들여져, 다른 소설은 도저히 읽을 수 없다고 했다. 밍밍하고 심심한 글은, 강렬한 맛에 길들여진 감각 앞에서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강렬한 것을 좋아한다. 음식은 매콤하거나 이국적인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것을 선호하고, 음악은 하드록과 헤비메탈, 고딕 록 등을 즐기며, 그림은 야수파의 색채에 마음을 뺏긴다. 그러나 하루 세끼 자극적인 음식만 먹고, 스물네 시간 강렬한 음악만 듣는다면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귀가 아프고, 몸이 지치고, 감각이 둔해진다. 빛이 빛으로 존재하기 위해 어둠이 필요하듯, 강렬함만으로는 감각의 온전함을 누릴 수 없다.
고전 함께 읽기 다음 책 선정 투표에서 《작은 아씨들》이 선정되었을 때, 나는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죄와 벌》의 어둠을 읽은 뒤, 반동처럼 밝고 따스한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 것이다. 인간의 심리는 대비를 통해 자신을 회복한다. 반복적인 자극에 우리는 점점 둔해지며 적응한다. 강렬한 경험만 계속하다 보면, 평범함의 아름다움은 느끼기 어렵다.
언젠가 배가 아파 며칠 동안 죽만 먹어야 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죽의 싱거움 속에서, 백김치 국물 한 숟가락의 짜릿함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는지! 탄산수처럼 톡 쏘는 상쾌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미묘한 맛의 폭발은 평소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각이다. 강렬함만 좇던 나의 감각은, 잔잔함으로 그 역치를 낮췄을 때야 비로소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극단적인 주제와 강렬한 문장만을 좇는 글은 순간적 흡인력이 있다. 하지만 잔잔하고 섬세한 글은 독자가 오래 머물게 하고, 마음 깊은 곳에 여운을 남긴다. 삶도 마찬가지. 하루 종일 강렬한 감정이나 사건에 몰입하면, 일상의 소소함과 평온함은 느낄 수 없다. 인간은 대비 속에서 자신을 깨닫고, 감각을 회복하며, 존재의 깊이를 체험한다.
강렬함과 잔잔함, 어둠과 빛, 자극과 평온. 이 모든 대비가 서로를 살린다. 《죄와 벌》의 무게 속에서 인간의 심연을 꿰뚫어 보고, 《작은 아씨들》의 온화함 속에서 정서를 회복한다. 때로는 맵고, 때로는 싱겁게. 삶과 글의 진정한 맛은, 강렬함과 잔잔함이 교차하는 그 틈 속에서 비로소 완전해진다.
고함 5기, 《작은 아씨들》함께 읽고 싶은 분들은 큐알 코드 스캔해 신청하세요!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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