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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도 습관 - 오늘의 포기 밀어내기

100일 챌린지_Day 73

by 윤소희

3년째 운영 중인 독서 모임의 이번 달 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첫 해를 제외하면 책 선정은 완전히 민주적이다. 추천과 투표를 통해 다수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방식. 강제로 읽히는 건 아니란 말이다.


니체를 인용하는 책은 수없이 읽었지만, 니체 자체를 읽는 일은 버거웠다. 오래전 반쯤 읽다 덮었던 책을 처음 완독한 건 오디오북 덕분이었다. 출판사에서 제목을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로 바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목 중요함) 시처럼 낯선 문체를 귀로 들으니 그나마 숨이 트였다. 하지만 종이책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또다시 멈칫거렸다. ‘이해’보다, ‘견딤’을 요구하는 책이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임 책으로 선정된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연휴 동안 차라투스트라와 뒹굴며 문장을 붙들었다. 예상대로 단톡방에서 너무 어렵다는 말이 이어졌다. 어떤 이는 벌금을 내고 그냥 포기하겠다고 했다. 농담 반 진심 반이었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포기는 조용히 스며든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힘이 세다. 한 번의 포기는 금세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다른 이의 포기를 부른다. 개인의 삶 안에서 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포기의 전염’이 일어난다. 올해 초 시작했던 출간 프로젝트를 결국 접은 것도 그 전염 때문이었다.


나는 단톡방에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읽지 못해도 괜찮아요.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도전하지 않음’이 습관이 되면, 언젠가 작은 문장조차 넘기기 어려워질 거예요.”

실은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시작에 강하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면 힘이 빠진다. 새로운 일을 벌이는 건 잘하지만, 오래 붙들지 못했다. 방송, 비즈니스, 문학.... 다양한 커리어는 실은 도망의 흔적이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디어가 넘쳐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결말에 닿을 즈음 맥이 빠졌다. 100일 챌린지는 도망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자, 매일 포기를 밀어내는 훈련이다. 사소한 지속이 나를 붙들고, 글을 쓰는 손이 몸에 기억을 남긴다.


우리는 대개 큰일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작은 포기 앞에서 조금씩 자신을 잃는다. 니체의 문장보다 어려운 것은 오늘 하루의 포기를 밀어내는 일이다. 화려한 결심이 아니라, 조용한 끈기. 뜻을 다 알지 못해도 끝까지 읽으려는 마음, 감정이 따라주지 않아도 다시 펜을 드는 몸의 기억. 그 속에서 나를 잃지 않을 수 있고 의지력도 조금씩 자란다. (실제로 하기 싫은 일을 해낼 때, 뇌의 전중 대상피질(aMCC)이 활성화되고 커진다.)


요즘 나는 하루치 글을 쓸 때마다 자신을 칭찬한다. 잘 써서가 아니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멋진 글이 아니어도, 포기하지 않은 문장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문장이라 믿는다. 거창한 초월이 아니라, 오늘도 포기하고 싶은 나를 넘어선 인간적 극복. 그 순간 내 안의 위버멘쉬*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빛난다.



*위버멘쉬(Übermensch) — 니체가 말한 ‘초인’, 기존의 도덕과 한계를 넘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인간.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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