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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14. 2020

나비 같은 가벼움이 그립다

담양 소쇄원, 가사문학관, 식영정

일기예보에 맞춘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얻기 힘든 행운이었다. 갑자기 해가 나자 망설임 없이 떠난 덕분에 가 보고 싶었던 소쇄원과 가사문학과, 식영정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돌아볼 수 있었다. 옛 문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밟아 보며.



담양 소쇄원_한국의 민간정원 중 최고로 칭송 받는다


담양 가사문학관_송강 정철의 <송강집> 등 가사문학 관련 전시


담양 식영정_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아름다운 경치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행운은 기대할 수 없었다. 밤새 비가 무섭게 내렸다. 이틀 전 자전거를 타며 지나갔던 강가의 자전거도로까지 물이 범람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카페에 가서 책이나 보려고 가방에 책과 노트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우산을 쓰고 숙소를 나섰지만, 얼마 걷지 않아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우산을 접고 바로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가 버스를 탔다. 가방은 책이 들어 있어 무겁고, 해를 막아줄 모자도 갖고 오지 못했지만 미룰 수 없었다. 


예전보다는 정확도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일기예보는 틀릴 때가 많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예보 정확도를 1% 올리는데 약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연을 오차 없이 예측한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일기예보나 다른 여러 정보에 맞춰 세운 계획 대로만 움직여서는 제대로 여행하기 어렵다. 매일매일의 계획이나 동선을 짜기보다는 여행 전체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나 가보고 싶은 곳을 우선순위화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편이 낫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게 필요하다. 여러 상황에 따라 바로바로 결정해 움직일 수 있도록.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뛰어내릴 수 있는
나비 같은 가벼움이 우리에겐 부족하다

조용미의 시 ‘가수면의 여름’ 중


나비 같은 가벼움이 필요한 건 여행만이 아닐 것이다. 살다 보면 '오늘의 날씨'보다 예측하기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그런 불확실성 때문에 삶에서 너무 구체적인 계획은 목적을 향해 나아 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삶의 목적이나 방향을 정하는 건 필요하겠지만.


계획의 가벼움뿐 아니라 물리적 몸집의 가벼움도 필요하지 않을까. 코로나 19를 잠시 피하겠다고 집을 떠난 지 반년이 되어 간다. 중간 크기의 캐리어 두 개만 들고 나왔는데, 반년을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다. 문득 집안을 가득 채운 가구며 물건들의 진정한 소용과 가치는 무엇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진 것이 줄고, 벌여놓은 일이나 매인 곳 등이 줄어든다면 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을 텐데. 


한때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닌 적이 있었다. 나비가 이 꽃 저 꽃을 맘 가는 대로 옮겨 앉듯,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고 하고 싶은 일을 새롭게 시작하며. 그랬던 내가 요즘은 무엇을 해볼까, 어디를 가볼까 생각만 하다 날개를 접는 일이 꽤 많아졌다. 몸집이 커지고 무거워진 것이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아’ 같은 상황 탓과 핑계를 대기 전, 내 무게부터 줄여야 하지 않을까.  


너푼너푼 날아오르는 나비 같은 가벼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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