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Nov 27. 2023

내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쥐를 좋아해도 괜찮아!

개성

아들이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때 좋았다. 교복 밑에 튀는 연두색 양말을 고집하거나 사람들이 여자냐고 놀리는데도 의연하게 머리를 기를 때 박수를 보냈다. 100점짜리 성적표보다 고집스럽게 티셔츠의 앞뒤를 바꿔 입을 때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주었다.



인간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다. 남과 비교하며 똑같아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계속 주위를 흘긋흘긋 보며 그들의 잣대로 판단해 나를 수정해 나간다면, 결국 누군가의 복제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영원히 진짜 '나'는 찾을 수 없다.



까맣게 윤이 나는 예쁜 털을 가진 감장 고양이는 자신의 털을 아름답다고 여기며 자랑스러워했다. 사람들은 그런 감장 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며 돌을 던졌다. 감장 고양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질지언정 한 번도 남의 음식을 훔쳐 먹거나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적이 없는데 도둑고양이라니. 억울했다.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감장 고양이는 몹시 배가 고팠다.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서 가보니, 창문 너머 커다란 식탁에 파티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보는 사람은 없고, 창문은 열려 있고, 어차피 도둑고양이로 불린다. 고민하던 감장 고양이는 창가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렇게 그 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자신의 아름다운 까만 털에 도둑질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도둑질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




단지 털이 까맣다는 이유로 도둑고양이로 몰리고 돌팔매를 당하면서도, 감장 고양이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선택했다. 죽음까지 감수하며 자신만의 길을 끝까지 간 감장 고양이는 분명 자존감이 높았을 것이다. 자신의 색깔을 지키며 살아가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다수의 기준을 따르는 쉬운 길을 택한다. '동조효과'나 '군중심리'에 대한 심리학 연구 결과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은 '튀는' 것을 불편해한다. 다수의 기준에 어긋나는 것을 악으로 규정해 가차 없이 돌을 던진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악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증오의 대상, 납득할 수 없는 대상을 쉬이 '악마'라고 불러왔고, 여기 없어야 할 존재가 여기 있으면 괴물이라고 한다.

이연식 <괴물이 된 그림> 중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스스로 돌아보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군중 속에 섞여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 심지어 맞고 있는 자가 맞아도 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누구나 그 무리에 섞일 수 있다. 특별히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는 한 급류처럼 휩쓸려 간다. 돌을 던지지 않기 위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다.
...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 줌으로써 내게 있는 힘을 실감하고 나자 결코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로버트 그린 <50번째 법칙> 중



사람들은 내 인생에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쉽게 화살을 던진다. 누가 뭐라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말의 영향력 아래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중요한 일일수록 많은 사람에게 떠벌리기보다는 비밀로 지키는 게 좋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말하는 순간, 내가 아나운서가 될 수 없는 101가지 이유를 듣게 될 것 같았다. 정말 나를 응원해 줄 사람 두어 명에게만 이야기하고, 방송국 입사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비밀을 지켰다. 때로는 돌을 정면으로 맞는 걸 피해 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KBS 윤지영 & 윤소희 아나운서


사랑에 빠지는 달콤한 순간도 나를 잃어버리기 쉬운 때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 <귀여운 여인>의 올렌카는 극장 소유주인 첫 남편과 살 때는 모든 삶의 관심과 척도가 연극이었다. 그러다 목재상과 두 번째 결혼을 하자 세상의 중심이 각종 목재로 옮겨온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색을 더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올렌카처럼 자기 자신이 되기를 포기하는데, 스스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게 뭐냐고 욕망에 대해 물어보면 당장 답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 광고에서 늘 본 이미지나 대중의 부러움을 사는 유명인의 삶처럼 사회의 규범이 덧입혀진 욕망을 말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나의 색깔은 무엇인지. 쉬운 질문 같지만 생각보다 답하기 어렵다. 평소에 아주 작은 것부터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건 무엇인지 자주 묻고 기억해 두어야 한다.



냄새나는 두리안을 좋아해도 괜찮고, 하늘을 초록색으로 태양을 파랑으로 칠해도 괜찮고, 심지어 쥐를 좋아해도 괜찮다. 물론 나는 쥐라면 미키마우스도 싫어하지만, 그게 나다. 나한테 쥐를 좋아하라고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당신이 쥐를 좋아해도 괜찮다. 




윤소희 작가 _ 시칠리아에서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