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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가 힘이 되길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어두운 터널도 언젠가는 빠져나오게 된다.

by 테라

나는 81년생이지만 원숭이띠이다

빠른의 개념이 없어진 시대를 살지만 내가 태어난 시대에는 당연했던 빠른 입학을 했던 1월생이다


나는 이 “빠른”이라는 개념이 싫었다

“빠른”이라는 개념이 가져오는 ‘빠른 년생‘만이 살면서 겪는 상황들이 있다.


사례 1) 살던 대로 친구들과 동일한 나이로 말하면?

”왜 나이 많은 척하냐 “라는 핀잔의 말을 듣던가

원래는 후배였던 애들에게 “뭐야~ 친구네~”라는 반응과 함께 언니대접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취급받거나

내가 딱히 원치 않음에도 분위기상 한 살 어린(?) 애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거나, 그걸 거절하면 꼰대가 된다


사례 2) 그래서 호적나이로 말하면?

같은 학년을 다닌 80인 친구들에게 “너만 어려서 좋겠다~” “뭐야~동생이잖아~”라는 말을 듣는다.


둘 다 싫었다

그냥 이런 애매한 혼돈이 싫었다

마치 내가 뭔가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되는 상황이 싫었다.


나는 나를 소개할 때 띠로 말한다

우리나라의 띠는 음력기준을 따른다.

다행히 나는 1월생이라 띠만큼은 80년의 띠인 원숭이띠이다.

여기서는 헷갈림이 없다.


그렇다. 서두에 소개가 길었지만

나는 원숭이띠이며 2025년 46세가 되었고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더라)

이 이야기는 내가 46세가 되는 동안 겪었던 이야기 중

힘듦과 그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 그리고 사업에 관한 부분을 풀어놓은 과정이다.


46세가 되는 시간 중에 지난 8년은 최악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2017년.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둘째를 임신한 채로 사기를 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 인생은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났다

졸업을 하면서부터 학자금대출이라는 부채를 가지고 시작했던 나는 2007년 금융권에서 첫 직업을 가진 뒤부터 그저 돈을 벌어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이루자!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고 ‘자수성가’가 되는 꿈을 꾸면서 차곡차곡 경험과 자산을 쌓아 올라갔다


새벽 6시에 출근하고 밤 12시에 퇴근하는 신입시기를 지나 꾸준히 연봉을 올렸고, 이직을 하고 점차 사업의 규모를 넓히는 방식을 배워가면서 나는 성장했다 억대연봉을 꾸준히 달성했으며

결혼과 출산을 하며 첫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가족 모두를 비즈니스클래스로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나는 성장했고 가족의 자랑이 되었었다.


하지만 사기를 당했다는 걸 인지한 2017년 초여름

나와 내 가족은 정말 순식간에 무너졌다

10년간 열심히 모았던 자산을 잃음과 동시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채무가 생겼고,

한창 부동산을 늘려가던 시기였던 그즈음에 갖고 있던 강남/서초/송파의 아파트를 분양권을 포함해서 모두 날렸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건 사기의 공범자로 몰려가면서 나의 경력이 모두 망가져버렸다는 것이다

사기를 당한다는 것이 개인의 삶을 얼마큼 망칠 수 있는지 그 영향에 대해 나도 내 인생에 불쑥 나타나기 전까지는 상상조차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 일이 내 삶에 벼락같이 침범했을 때의 나의 대처능력이라는 것은 고작 ‘최선을 다하자’였다.


그저 무지했고 순진했다

나는 나의 결백을 스스로 너무 떳떳하게 알고 있었기에 내가 어떤 상황에 휘말리게 될 줄도 모르고 전 직장 대표가 잠적을 하는 순간부터 뭔가를 해결해 보겠답시고 가장 앞장서서 피해구제를 외쳤다.

잠적을 했던 전 직장 대표는 잠적한 지 2주 만에 나타나서 곧바로 경찰서로 자수를 했고 횡령/배임의 주도자가 자수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니.. 돈을 찾지 못하는 피해자그룹은 그 피해를 보상받을 다른 타깃이 필요했다

그렇게 순진하게 내 인생은 망가져갔다


가장 가까웠다고 믿었던 지인들이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장점을 무기로 사용하며 나에게 민사소송을 걸어왔고, 이런 민사는 보통 형사소송과 함께 진행된다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나는 홀로 경찰서와 법원을 수없이 들락거렸다.정말 무서웠고 비참했다.

앞이 깜깜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임신을 했음에도 체중은 계속 빠져서 인생 최저몸무게를 갱신했고, 그때 나는 급격한 체력과 면역력 저하로 찬바람을 쐬면 얼굴과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한랭알레르기가 생겼다.

그 알레르기는 출산 이후 4년을 더 갔고, 좀 나아진 지금도 가끔 몸이 추우면 얼굴에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그때는 내 인생이 그냥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허무하게 빼앗기고도 수십억 원의 채무가 생겼고

남편과의 사이도, 가족들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내 멘탈과 자존감은 끝없이 추락했기에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임신한 상태로 나는 그저 죽고 싶었다


나는 본투비 긍정쟁이다.

살아보니 이 성격은 친정엄마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사춘기 시절에도, 혼돈의 20대에도

힘들다고 해서 한 번도 장난 삼아라도 “죽고 싶어”라는 말을 내뱉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나는

깡마른 몸에 볼록 나온 배를 잡고 가난에 찌든 모습으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당시 머릿속에 든 선택지는 ‘아이를 낳고 죽어야 되나… 아이랑 함께 죽어야 되나..’라는 것이었다.

남겨진 가족에게 그나마 덜 피해를 주는 게 뭘까..라는 나름의 고민이었다


왜 안 죽었냐고?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냐고?

혹시 죽으려고 해 본 적 있는지 되묻고 싶다

정말.. 그 순간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알았다.

왜 사람들이 죽을 때 술을 먹거나 약에 취해서 저지르는지

죽음을 시도한다는 것은

진짜 너무 무섭기 때문에 실행에 옮길 용기가 쉽사리 안 난다

그래서 나는 겁쟁이라 죽지도 못하고 억지로 살았고

죽지 못하니 계속 이어지는 무서운 상황은 여전히 내 앞에 펼쳐졌다

그 뒤로 진행된 온갖 삶의 폭풍들을 겪으며

내 온몸과 정신력을 동원해 최소한 남편과 아이들에게만큼은 피해가 적도록 막아내고 버텨냈다.


2025년 나는 다시 사업가가 되길 꿈꾸는 나로 성장했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밝히는 건

이런 삶을 버텨내고 이만큼 성장한 나에 대한 칭찬이나 위로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시절 항상 생각했다

이런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힘듦을 이야기할 곳이 없구나

가까운 가족일수록 힘든 것조차 티 내지 못하고,

동네지인들은 혹여나 알까 봐 걱정이다.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나와 같은 이런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 죽고 싶은 시간을 견뎌내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던 시기가 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혹시나 예전의 나와 같은 그런 악몽 같은 시간을 견디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경험을 나눠주고 용기가 되어주고 싶다


시간은 흘러간다

식상한 멘트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

시간은 정말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고통이 만재한 그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몸으로 꾹꾹 참아내면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이 주는 도움으로 우린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된다


빚더미에 앉아 있던 것도 나고

이 빚을 해결할 사람도 나다

이 걸 받아들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나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오롯이 나뿐이다

누군가 대신 나타나서 나를 구해주고,

이 수령에서 나를 꺼내주길 기다리게 되는 그 심정.. 나도 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은연중에 배우자나 부모가 해줬으면 하는 것도 사람이라면 인지상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그건 그저 내가, 당신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 대신해 줬으면.. 하는 기대가 마음속에 있을수록 그 기대를 품은 대상과의 사이마저 망가뜨린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응원한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응원한다

우리는 이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걸 어떻게 해내는지 그걸 어떻게 해왔는지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가 힘든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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