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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이 Aug 08. 2020

서랍 속 기억을 마주하는 일

나를 나답게 하는 것



2년 전 겨울,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피아노 학원을 개원했다. 나는 지인들과 함께 동생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준비해 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곳에는 5개의 피아노 방 그리고 웅장한 그랜드 피아노 한대가 입구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덕분일까. 어릴 적 다녔던 피아노 학원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방마다 문을 열어 조심스레 피아노를 두드려 봤다. 마지막 방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려 문을 여는 순간 난 너무 놀라 잠시 멈칫했다.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나는 상기된 얼굴로 피아노를 만져봤다. 날개 모양의 우아한 느낌을 주는 보면대, 진한 갈색 빛이 도는 콘솔 스타일 그리고 묵직하고 깊은 소리를 내던 내 피아노. 똑같았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물론 이것이 진짜 내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심장의 두근거림을 이유로 나는 내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누워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마음속 저변 어디쯤 숨겨놓았던 서랍 속 기억이 자꾸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방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남자 어른과 대치중이다. 돈이 될 만한 것을 가지러 온 남자 어른이다. 그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바로 피아노. 남자 어른은 언성을 높이며 방문을 잠그고 열지 않는 나를 향해 왜 피아노를 가져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듣고 싶지 않다.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나대고 있다. 나는 커터칼을 손에 쥐고 피아노를 가져가면 죽어버리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곧 다리에 힘이 풀려 웅크리고 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가는 남자 어른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한참 뒤 나는 방문을 열었다. 내 보물을 스스로 지켜냈다는 뭔지 모를 뿌듯함과 또 올지 모르는 두려움이 공존했다. 베란다 창문에 축 처진 어깨로 담배를 태우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다. “미안하다” 아빠는 한 마디뿐이다.


1년 뒤, 나는 똑같은 방문 앞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바닥에는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많은 양의 먼지와 빛바랜 악보집 그리고 연주회 사진 액자가 자리 없이 남겨져있었다. 모든 것이 흩어졌다. 가슴에 파고드는 눈물을 닦아냈다. 나는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이 방 너머, 그녀가 울고 있었다. 포효하는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은 자식에게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였다는 죄스러움 그리고 남편에 대한 치솟는 분노였으리라. “엄마, 나는 괜찮아.” 나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나는 울음 대신 참는 것을 택했다. 운다고 달라질 게 없는 현실이라는 걸 이미 알았으니까.


나는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엄마가 보험 일을 시작하고 보험왕이 되어 6년 만에 사준 피아노. 그것은 엄마에게 노력의 산물과도 같은 존재이면서 엄마의 자부심이기도 했을 것이다. 전교 음악부장을 맡게 된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합창제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반주를 하는 나를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엄마. 피아노 전공을 권유하는 음악 선생님의 전화에 삼 남매를 가르치기에 힘이 부친다는 답변을 하면서도 내심 잘 해내고 있는 딸의 기특함이 녹아있는 그런 존재. 그것이 사라졌다는 건 분명, 엄마에게도 큰 상처였다. 엄마의 눈물에는 여러 의미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건 아마도 나에 대한 미안함일 것이다.


피아노의 부재는 동생의 보물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오빠의 자책과 아빠에 대한 분노, 어린 동생에게는 돈을 많이 벌어 피아노를 꼭 사주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남았다. 그리고 내게는 예고 없던 이별과 기약 없는 그리움이 더해져 데이다 못해 찢긴 아픔이 되었다. 여중생인 나는 이 거대한 이별 앞에, 어쩌면 빚쟁이의 딸이기에 짊어져야 했던 서글픈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몇 달 전, 시에서 운영하는 동네 문화카페 피아노 강좌에 수강신청을 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업이 몇 차례 연기가 되고 얼마 전, 드디어 첫 수업을 받았다. 피아노 방에서 손 모양과 자세를 잡아보며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연습했다. 연습하는 내내 골반과 허리 사이 어디쯤 통증이 느껴졌다. 1시간 반 동안 움직이지 않고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연습, 또 연습을 했다. 동그라미 열 개가 그려진 진도표에 한번 연주할 때마다 까맣게 연필로 색칠을 하며 꼼짝하지 않고 연습했던 어린 시절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날 밤, 퇴근 후에 온몸에 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허리부터 발끝까지 쑤시고 저려왔다. 이른 저녁, 방에 들어가 누웠다. “엄마, 다리 이렇게 해봐요.” 큰 아이가 어느새 따라 들어와 이불을 턱 끝까지 덮어주고는 내 다리를 곧게 펴 보드랍게 주물러줬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딸의 손이 얼마나 야무진지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만져주니 지나간 자리마다 한결 시원했다.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 다녀온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엄마, 오늘 피아노 잘 배웠어요?”
“그럼. 엄마 엄청 열심히 배웠지.”
“엄마 피아노 잘 친다고 선생님이 칭찬해줬어요?”  
“응, 선생님이 엄마 잘 친다고 칭찬해줬어.”
“그런데 다리가 왜 아픈 거예요?”
“엄마 오랜만에 학원 가서 배우려니까 너무 긴장했나 봐. 엄마 조금 어려웠어.”
“엄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면서요. 계속 연습하면 되잖아요.”


아이가 나를 꼭 안아줬다. 아이가 방문을 닫고 나간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피아노를 칠 줄 알면서 왜 피아노 수업을 신청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말처럼 왜 나는 자꾸만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피아노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배움을 끝낸 적도 없었다. 끊어졌을 뿐.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가장 슬프고 처절하게 맞이했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운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니 싫었다. 어쩌면 그 상처를 곪게 만든 건 결국 나였다. 들추기 싫어 감추고 묻어두니 곪을 수밖에. 그러니 자꾸 덧이 난다. 그 덧은 날카로움이 되어 나를 아프게 한다.



딸아이의 말처럼 연습하기로 했다. 서랍 속 기억을 마주하는 일 그리고 상처를 돌보는 연습. 오늘 밤, 상처를 깨끗하게 닦아 해가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길에 놓아두기로 했다. 그 상처가 내 영혼을 잠식하지 않도록. 서랍 속 기억이 바람결에 떠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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