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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Jan 14. 2024

아프니까 발레, 아프지만 발레

발라레 인생 3막: 무용수 이야기(끝) By Sujiney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픈 곳이 없다면? 그 무용수는 죽은 것이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율리아나 로파트키나 무용수(커버 사진)가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했던 말이다. 로파트키나 본인이 저작권을 가진 말은 아닐 수 있다. 무용수들 사이에선 워낙 유명한 말인지, 이 이야기를 클래스에서 해주신 선생님들도 여럿이다.   

자매품으론, "아픈가요? 정상입니다"(김현우 원장님), "지금 아프지 않으면, 영원히 나아지지 않아요"(최시몬 선생님) "얼마나 아플까, 하지만 그래도 해야지"(김광현 선생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해야 늘어요"(조성은 선생님) 등등.

웃긴 점. 아프다고 무조건 늘지는 않는다는 것. 제대로 아파야, 나아진다. 잘못된 방식으로 아프면 그건 그냥 고문이다. 아픔의 양, 강도 및 빈도에 정비례해서 실력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픈 건 당연한데,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라니, 요상하기도 하지. 발레란 녀석.   




예전 발레 관련 브런치북에도 썼지만, 발레는 인간의 본능에 역행하는 움직임이다. 인간이 인간이길 거부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그게 발레다. 몸도 맘도 뻣뻣해지고 갈라진 나이에 발레 바(barre)를 잡고 레오타드를 입는 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절대선을 의식하며 경의를 표하는 일종의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왜 그렇게까지 발레를 하냐고, 한 선생님께서 물어보신 적이 있다. 이렇게 답했다.

현실을 잊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아무리 이제 와서 열심히 발레를 배운다고 해도, 그 아름다움을 손에 넣을 수는 없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그 절대적 아름다움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그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해요. 발레 클래스 동안만큼은, 밖에서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을 수 있고요.     



만들어본 발레 테마 스트랩. 재미있넹ㅋ By Sujiney


지금도 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외려 더 단단해졌다.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 신의 영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존재들인 무용수들에 대한 이야기 시리즈를 그래서, 더욱 쓰고 싶었다. 무용수 첫 시리즈의 최종회인 이 글을 쓰며,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들이 남아있음에 놀란다.    

무용수 스토리 연재 시리즈의 원칙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직접 인터뷰했던 무용수들의 이야기만 쓸 것. 둘째, 그 인터뷰들 중에서도 기사에 못다 썼던, 그래서 아쉬웠던 이야기들만 다룰 것. 셋째,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무용수들의 피드백도 반영할 것.

그렇게, 이들을 다시 만났다. 로베르토 볼레 무용수, 강미선 유니버설발레단(UBC) 수석무용수,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서희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박슬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오렐리 뒤퐁 전 파리오페라발레단 에뚜왈 및 예술감독, 박상원 무용수(게재 순서).          



생업에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하루, 토요일에만 쓰고, 그간 미국과 일본 출장 등등도 있어서, 글을 쓰다 코피 쏟은 적도 여러 번.
그래도, 쓰길 잘했다. 또 쓰고 싶다.  

더 많은 무용수들의 스토리가 마음속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있지만, 그 보물상자는 찬찬히 열기로 한다.         




한 가지, 무용수 이야기를 쓰면서 느꼈던 아쉬움이 있다. 무대에서 빛나고, 그래서 기자로서 인터뷰를 청할 수 있는 무용수들은 극히 소수라는 점. 아름다운 무용수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인데, 그들에게 주어진 무대는 한정적이다. 이렇게 나 같은 취발러(취미발레인)에게 시범을 보여주실 게 아니라 무대에서 박수를 받으셔야 할 것 같은 선생님들도 참, 많이 계시다. 그분들은 또 얼마나 항상 열심이신지.


발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대개 한 존재에 오롯이 진심을 바칠 줄 안다는 점 아닐까. 발레만 그런 건 물론 아니겠으나, 엄격함과 아픔이 필수 요소인 발레라는 예술로 삶을 일구어 가는 존재들을 보면 경건해지기까지 하다.   


최근에 읽은 발레 관련 기사.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 나온 로열발레단 관련 소식이다. 헤드라인이 "로열발레단 공연에 휠체어를 탄 무용수가 출연한다"라니, 처음엔 갸우뚱했다. 발레는 인간 신체를 한계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 몰아붙이는 예술이다. 팔다리 사지는 물론, 머리와 눈빛, 발끝까지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발레 무용수라니.      



기사의 요지인즉, 발레를 전공하며 프로 무용수를 꿈꿨던 조 파월-메인(Joe Powell-Main)이라는 남성이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져서 꿈을 포기했으나, 그래도 발레를 잊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로열발레단과의 협업으로 휠체어 등 여러 장치의 도움을 받아 무대에 선다는 내용이다.

조 파월-메인 무용수는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춤을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라틴댄스도 도전해서 상도 받았죠. 휠체어 무용수에 이미 문호가 개방된 춤들이 많아요. 그러다 생각했죠. 발레는 왜 안 돼? 안 될 거 없잖아? 발레도 좀 더 다양성을 포용하는(inclusive) 예술로 발전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브라보. 영국 런던에 있었다면 열일 제치고 버선발로 보러 갔을 공연이다. 이런 기사를 한국에서 나도 쓰고 싶다.




인간적으로는 논란도 많았다지만, 명실공히 20세기 미국 발레의 초석을 쌓은 발레 예술가, 조지 발란신이 남긴 명언들로 무용수 첫 시리즈를 마무리.     


"나는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필요 없어. 춤을 추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원해(I don't want people who want to dance. I want people who have to dance)."


"처음엔 땀을 흘려야 해. 그럼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어, 만약에 네가 굉장히 운이 좋고, 기도를 열심히 했다면 말이다(First comes the sweat. Then comes the beauty if you are very lucky and have said your prayers).  

"왜 스스로에 그렇게 인색해? 왜 머뭇거려? 뭘 그렇게 아끼는 거야? 다음에 하겠다고? 다음이란 없어. 지금만이 있을 뿐이야. 바로 지금.(Why are you stingy with yourselves? Why are you holding back? What are you saving for - another time? There are no other times. There is only now. Right now."

이 세상 모든 발레 무용수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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