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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Nov 11. 2020

마지막 안부

고별 소나타

  '엄마! 엄… 마!'

 큰 소리로 부르며 쫓아가도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점점 멀어져 갔다. 꿈이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에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건강하던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내가 미국으로 떠난 지 4년째 되던 어느 겨울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고국에 다녀오는 다른 학생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다음에는 꼭 다녀와야지’ 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4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그리운 집에 도착했다. 노란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자, 환한 미소를 띠며 달려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문틈 사이로 보였다. 예전보다 부쩍 가늘어진 몸매와 은행잎처럼 노란 엄마의 안색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개성이 고향인 엄마는 특별한 날이면 만두피까지 손수 반죽해 정성스럽게 만두를 빚곤 했다. 그날도 오랜만에 집에 온 둘째 딸을 위해 엄마는 만둣국을 끓여주셨다. 돼지고기, 숙주, 김치, 두부를 듬뿍 넣어 만든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자 목구멍이 뜨거워지며 코끝이 찡했다. 아픈 몸으로 하루 종일 만두를 빚었을 엄마를 떠올리니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그다음 날부터 엄마의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입원하자마자 여러 정밀검사를 받았고, 수술 날짜도 금세 잡혔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 나빴다. 우리 가족은 엄마에게 병명을 숨기기로 했다. 마음이 여린 엄마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수술 날이 왔다. 삼십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수술 중'이란 초록색의 표시등이 꺼지며 보호자를 찾는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얼마 전 꿨던 꿈이 떠오르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술실 앞으로 달려갔다.


"보호자 한 분만 들어오세요."

나는 용기를 내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온몸에 퍼진 암세포를 보여주며 수술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다.      

회복실에서 만난 엄마는 한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희망에 해맑은 표정이었다. 어린아이 같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어왔다.     

“수술은 잘… 된 거지…?”

“네… 아주 잘 되었대요.”     

참담함을 숨긴 채,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현실이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안간힘을 다해 회복하려고 애쓰시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마음 한 켠으로는 기적이 생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픔었다. 진실을 알리는 기회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상태에서도 엄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입원 생활이 몇 주 정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링거액을 바꾸러 들어온 간호사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열린 문틈 사이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병실 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대었다.    

  

“제 상태는 좋아지고 있나요? 희망은 있는 건가요?”     

엄마의 질문이 공기 중에 떠돌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걸까.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는 한동안 얼어붙은 채, 숨을 들이마셨다.     

생각보다 심각한 어머니의 병세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을 자꾸 미루고 있었다. 병원 생활이 몇 달쯤 지나던 어느 날, 조교로 일하며 공부하던 미국 학교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언제쯤 복귀할 예정인지, 계속 일을 할 수 있는지 답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픈 엄마를 이대로 두고 떠나는 건 말이 안 돼, 하지만 학교 일을 더 미루면 장학금은커녕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

엄마를 향한 마음과 나를 위한 마음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했다. 결국, ‘어서 가서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에 다시 오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못 이기는 척 따랐지만,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스스로를 착한 딸이라 믿었지만, 나밖에 모르는 못난 딸이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볼 수 있으려나…”

떠나는 날, 늘 남을 먼저 생각하던 엄마가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을 때, 나는 울컥 치미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엄마… 곧 다시 올게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엄마의 깊은 눈빛을 외면한 채,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엄마의 상태에 불안하고 초조한 날들이 이어졌다. 엄마를 만나기로 결심하고 서둘러 귀국 준비를 하던 중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나… 간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엄마의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어딜 가요?”

“어딘 어디야… 외국이지”     


 

김포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 낯설었다. 엄마가 사라진 거리는 7월의 무더위에도 서늘한 찬바람이 불었다.  길 위에 남겨진 엄마의 흔적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지나가며 남긴 작은 속삭임들이 어쩌면 어머니의 안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외국 간다”

엄마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그렇게 엄마는, 그 낯선 길 끝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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