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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담 일지] 9회 차 상담을 기다리며 2

다시 용기 내서

by 우주먼지

오늘 어김없이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영어 공부하고 러닝도 하고 성당에 갔는데, 성당에서부터 컨디션이 이상했다. 그냥 신부님의 강론이 따분해서 그런 건지, 지하 1층이어서 답답해서 그런 건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중간에 그냥 나왔다. 그런데 속이 너무 울렁거리고 앞이 노랗게 보이고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었다. 벤치 앞에 쭈그려 앉아서 헛구역질을 몇 번 하다가 걸어가는데.. 앞이 뿌옇게 보이면서 걸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멈췄다 걸었다 하면서 10분 거리를 40분에 걸쳐 겨우 집에 돌아와 속을 비워내고 한 시간을 내리 잤다. 일어나고 나니 아까 미칠 것 같았던 울렁거림은 괜찮아졌는데, 기분이 다운 됐다. 이런저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 브런치를 쓰는 날인데 글도 쓰기 싫었고, 그냥 그림만 끄적거리고 싶었다. 미국 박사 과정을 생각하고 있기에, 잠깐 필요한 서류가 뭔지 내가 뭘 준비해야 하는지 찾아보는데 다시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또 대상 없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이미 가진 것들의 감사함은 잊은 채, 내가 없는 것, 부족한 것에만 사로잡혔다. 왜 나는 OO처럼 하고 싶은 공부가 뚜렷하지 않을까, 나는 왜 진작에 박사공부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영어가 이 수준일까, 이 나이 먹도록 뭐 한 걸까, 왜 나는 매력적이지 않을까, 끝도 없이 파고들다가,, 누가 시키지도 않은 박사 준비 고민하면서 이러지 말고 일단 오늘 여기까지 찾아본 것에 의미를 두자 생각하고 다시 누웠다.


아직 속이 안 좋은 건지, 정신적 스트레스가 내 속을 안 좋게 하는 건지, 내 기분과 속이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하다 브런치 어플을 켰는데, 뜻밖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으로부터의 댓글이었다. 댓글 알림만으로도 이미 뭉클했는데, 글로서 위로를 받는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곤두선 내 신경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얼굴은 모르지만, 이렇게 공감받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신은 내가 견딜 수 있는 힘듦과 외로움만 준다고 했었나.. 내가 그림일기를 그리는 쇼츠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힐링받고 간다는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아는 지인들이나 가족들이 달아주는 댓글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의 댓글이 두 개나 달렸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힐링을 받는 만큼 누군가도 잠시나마 노래 + 그림을 보며 힐링받기 바랐는데, 그게 이루어지니 다시 한번 세상이 따뜻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몸무게가 40킬로까지 줄고, 그럼에도 영어공부하고 러닝 하러 뛰러 간 내가 안쓰러웠는지 신은 나에게 몸 그만 혹사시키라고 잠 좀 자라고 걷지도 못할 정도로, 잠시 세상이 노래지는 무서움을 경험하게 해 준 것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서 또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 떨고 있으니, 이번에는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따뜻한 댓글들로부터 위로받았다.


그동안 내가 30년 넘게 나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고, 혼자 살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는데, 요즘 나는 정말 나도 사람들한테 의지하고 싶어 하고, 사람들에게 힘을 많이 받는 존재라는 걸, 사람은 사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다가도 댓글 하나에 웃고 이 세상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내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나'밖에 없다는 말이 맴돈다. 항상 내가 받고 싶은 댓글만, 말만, 사람하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대부분은 혼자 살아가고, 혼자 일하고, 혼자 이겨내야 하니까, 그 때네 편을 들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오늘 그랬던 것처럼, 신은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주시지 않을까..


https://youtube.com/shorts/_rom_fiO6A4?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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