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가 만나다

재일교포 지식인 강상중교수

by 에도가와 J

난 2001년 만나면 좋은 친구 M사에 입사했다. 부서는 시사교양국 M스페셜팀이였다. 기라성 같은 피디님들(추후 국장과 사장까지 하신 분들)과 함께 일하는건 행복 그 자체였다. 첫작품은 나에게 잊지 못할 미션이였다. 후지TV와 함께한 한일공동 기획 2부작 “당신은 즐겁게 살고 있습니까”다. 당시 주류의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애니메이션과 재연 등 준비해야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힘든만큼 내공은 쌓였고, 공들인 예고는 칭찬과 함께 시청률에도 반영되었다. 기초를 튼튼히 배운 뒤, 난 최선배님과 줄곳 일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방송업무를 하게끔 해주신 스승 같은 분이다. 최선배님과의 첫작품은 지상파에서 최초로 도전한 정치다큐멘터리 <삼김시대 5부작>였다.정치는 완전 초짜였는데, 얼마나 편집실에서 살았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지만 1000권이 넘는 자료를 보고, 현장을 다니면서 나름 준척이 되었다. 최선배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 갚졌다.


난 2007년 12월에 M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히라가나조차 모를 정도로 일본어는 잠뱅이였다. 죽기살기로 한건 아니지만 1년간 일본어 공부에 집중했다. 내공이 쌓이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일본온지 3년만에 나의 주특기인 방송을 제작자입장이 아닌 서포터하는 취재코디네이터를 시작했다. 그런데 최선배님과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내색은 안해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일본사회에서도 지식인으로 칭송받는 강상중교수의 인물다큐멘터리였다. 2011년 오모니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걸 놓치지 않고 선배님이 찜을 한것이였다.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탁월하셨다.


IMG_1131.JPG 강상중교수님이 싸인해준 오모니 책


강상중교수가 집필한 <오모니>책은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뼈아픈 고통 속에서 시작된 재일한국인 1세대들의 삶과 역사를 다루고, 재일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도쿄대학 교수가 된 강상중의 에세이이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 땅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던 자이니치(재일한국인) 1세대인 어머니의 삶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어머니는 약혼자인 아버지를 따라 홀로 도쿄로 떠난다. 당시 아버지는 수가모에 있는 군수공장에서 일하셨다. 사택에서 타국의 삶을 꾸려나갔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선언으로 이곳 생활을 마감하고, 작은아버지가 있는 쿠마모토현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그곳의 삶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열악했고 수없이 차별을 받았다. 강상중교수는 조국이 분단돼 고향과 연락이 끊어진 채로 차별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살아남기위해 애쓰며 살아온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생을 통해 ‘재일(在日, 자이니치)’의 역사를 언급했다. 재일2세로 차별 당하며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 어두운 사춘기 시절을 보낸 살아온 형 마사오와 강상중교수의 일화는 우리에게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책내용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공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지만, 과거의 얘기를 풀어내기 위해선 많은 장치를 해야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베테랑 최선배님의 지도하에 취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강교수님의 적극적인 지원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뇌리를 스치는 건 강교수님이 저음으로 나를 부를때의 목소리다. 글로 표현하려고 하니 느낌이 안온다. 기회가 된다면, 꼭 들려주고 싶다.


취재기간 중, 쿠마모토현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방문했다. 정확한 위치가 기억나지 않지만, 쿠마모토시가 훤히 내려보이는 산중턱이였다. 강교수님이 방송을 의식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무덤쪽으로 향하지 않고 옛생각에 빠져 시가지를 바라보며 눈을 잠시 감으셨는데 이 느낌이 너무 좋았다.


M본부의 이제는 말할수 있다 프로그램처럼, 편집은 선배님의 몫이지만 그 영상을 내가 촬영했다. 당시 멀리서 최선배님이 엄지척을 해주셨다. 옛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에 뿌듯했다. 1차 취재때는 선배님 대학후배인 어린친구가 카메라를 맡았는데 그리 능숙하지 않았다. 여비로 들고온 6미리 카메라는 나의 몫이였고 4년만에 피디가 되어 열심히 찍었다. 그 영상은 꽤 방송에 사용되었다.


일본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강교수님도 어렸을때는 자신을 숨겼다고 했다. 재일2세로 태어난 것이 부끄러웠고, 왜 난 자이니치인지? 역사의 쓰레기 같은 존재인것 같아 고향인 쿠마모토를 떠나 도쿄로 왔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자신의 출신이 주위사람들에게 밝혀지는게 싫어 항상 도망다녔다고 했다.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자신이 고통스러운지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고 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되었고, 더이상 도망치지 않고 내뿌리를 냉철하게 인식하며 당당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 결심은 1971년 작은아버지 초대로 한국방문이 결정적이였다. 부모님의 고향에서 뭔가 가슴 벅차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끼며 나가오 데츠오가 아니라 강상중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독일유학까지 했지만 자이니치만이라는 이유를 취직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1998년 자이니치 최초로 도쿄대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교육분야뿐 아니라 일본사회에서도 주목받는 지식인으로 자리잡았다.


끝으로 자이니치에 대한 그의 철학이 묻어나는 장면이 있었다. 강교수님과 부모님 의 산소방문 때다. 한가지 비밀을 알려주셨다. 돌아가긴 부모님의 비석 뒷면에 형제이름을 모두 한국어로 세겨놓으셨다. 모두 뿌리가 한국이라는 것을 부모님께 고하고 싶었고, 50년, 100년 후 한국사람이라는 의식이 없어질수 있지만, 자손들이 성묘하러 와서 뒷면을 보고 아이들이 이것에 대해 부모에게 물어보지 않겠냐고 했다. 이묘가 남아 있는한...


그는 어머니처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길이라고 인터뷰를 끝냈다.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강교수님과의 귀중한 만남, 선배님과 함께한 취재현장이 머리속에 필름처럼 돌아간다. 이들을 언제 또 만날수 있을까. 그날을 기약하며...


강상중교수 취재현장.JPG 강교수님과 같이 찍은 유일한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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