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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도가와 J May 15. 2020

갑질, 나부터 변하자

2004년부터 일본의 자유국민사라는 출판사가 매년 1년간 언어를 분석하여 올해의 신조어와 유행어대상 발표한다. 2019년 대상은 럭비월드컵 일본대표팀의 슬로건인 원팀(One Team)이다. 그들은 출신지, 문화, 자라온환경과 스펙 상관없이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치단결하고, 그런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가 하나가 되자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참 멋진 말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어떤가?

원팀을 강조하면서도 인구에 회자되는 말 “갑질”이다. 나 또한 10년간 방송취재업무를 하면서 갑질을 수차례 경험한적이 있다. 그 순간은 굉장히 힘들지만 반대로 반면교사가 되어 나의 언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2011년은 갑질의 연속이였다.

신년 첫 업무로 한 외주제작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본의 신비즈니스라는 주제로 취재의뢰였는데, 일본으로 넘어가 취재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통으로 촬영까지 맡게되었다. 난 협력회사 카메라감독과 함께 현장에 나갔다. 옛PD경험을 살려 충실히 촬영한 Tape를 넘겼다. 그런데 촬영원본이 마음에 안든다며, 계약서에 명시한 금액을 다 줄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어이가 없었다. 한바탕 싸우긴 했지만 비용을 다 못받을 것 같아, 그들이 제시한 금액으로 마무리 했다.


6월에는 모방송사의 보도국 취재였다. 공항에서 꽤 오랜시간 기다렸는데 취재팀이 나올 기미가 안보였다. 고가인 ENG카메라를 가지고 오면서 카르네를 신청한 것이 문제였다. 지방공항이라 카르네를 모르는 미경험자가 배치되어 하나씩 점검하다보니 1시간 이상 걸렸다. 첫만남이 꼬여서 그런지, 취재하는 동안 힘들었다. 담당기자가 안하무인이였다. 일본에서 잘하고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해 취재왔는데, 자신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이 알고있는 내용과 다른 것이 나오면 탁 끊어버리거나 짜증내는것이 다반사였다. 일본하면 스시라며 괜찮은데서 식사하자고하여 안내했다. 다들 질좋은 스시를 기분좋게 먹었다. 그는 계산서를 보더니, 너무 많이 나왔다면 바가지를 씌운게 아닌지 하나씩 따지기 시작했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하기전에 비싸다고 설명을 드렸는데, 이런 행동을 하니 할말이 없었다.


모선배로부터 받는 지역제작사팀은 방송구조의 문제인지, 개인의 문젠인지 모르겠지만 돈에 대해 너무 지저분했다. 취재는 카메라감독이 원하는 연출로 잘 마무리했다. 하지만 나리타공항에서 정산하는데, 언성이 높아졌다.

P감독: 김대표, 빠듯한 예산이라 코디비용을 줄여줬으면 좋겠는데, 나 일본와서 제대로된 식사도 못했어요.

김대표: 선배소개라 벌써 할인해드린 금액입니다.

P감독: 해외촬영팀이 한국에 와서 내 차량으로 나갈땐, 난 돈안받아요. 그렇게 해줄수 없나요?

김대표: 그건 감독님 입장이지요. 저한테 동일하게 적용시켜달라는건 이해가 안됩니다. 차량은 벌써 50% 할인해드린 금액으로 청구한거구요.

P감독: 좀 빼줘요. 너무 빡빡하시네. 그럼 5,000엔을 주면 안될까요?

김대표: 왜 5,000엔을 드려야하나요?

P감독: 방송사에 빈손으로 갈수 없어서 과자선물 사가지고 갈려는데 돈이 필요해요.

김대표: 그건 감독님 카드로 사시면 될 텐데, 왜 제가 돈을 드려야하죠.

P감독: 알았어요. 고생많았어요. 조심히 들어가요.


정말 이해할수 없는 사람이였다. 방송사와 어떤 계약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온 조감독이라는 사람은 방송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 아니 지인이다. 만약 혼자왔다면 이런 문제로 얼굴을 붉힐필요가 없었을텐데 방송사에 가져갈 선물을 사기 위해 나에게 돈을 달라는 것 자체가 이해할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카메라감독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사회구조에 화가 나기도하고,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처음 일하는 사람과 업무계약서를 작성한다. 갑을관계를 떠나서 한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일하고자 만든 나만의 철칙이다. 그리고 최소한 1번이상 전화상으로 프로그램 책임자와 섭외내용과 비용에 대해서 소통하고 취재내용와 일정을 최종적으로 정리한다. 장소이동에 발생되는 비용와 시간까지 적어놓는다. 이렇게 하면 현장에서 일어날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할수 있기 때문이다.


말한디가 천냥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뭐든 일이든 팀웍이 좋아야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촬영분위기가 좋아야 일도 잘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2017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절대안될 것 같은 것을 지인의 힘을 빌려서 모두 해결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ALL편집되어 방송에 소개되지 못한 적이 있다. 편집은 책임자인 피디의 권한이라, 내가 함부로 할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방송전 편집된 이유라도 뀌뜸해줬으면 좋았을텐데 그런것도 없이 방송 나가고나서 물어보니 “어쩔수 없었다. 미안하다”라는 것이 전부다. 취재팀은 촬영하고 떠나고나면 그만이지만, 난 일본에서 남아서 신세를 진 지인들과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하는데 이런것 때문에 한국미디어에 대한 이미지와 신뢰관계가 무너지는건 참을 수가 없다.


후쿠시마현 원전 취재때다. 도쿄에서 촬영을 마치고 후쿠시현으로 올라가는 길이였다. 모방송사의 카메라감독이 나보고 후쿠시마 들어가서는 현지식을 먹지 않고, 한국에서 싸가지고 온 음식으로 해결할테니 종우씨도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했다. 순간 필요하지 않으면 돈을 줄테니 혼자서 식사하라는 뜻으로 들려 너무 기분이 나빴다. 같은 소속은 아니지만, 취재를 위해서 한배를 탄게 아닌가. 어떻게 보면 원팀이다. 원전사고로 인해 많은 소문이 와전되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건 좋지만, 상대방을 한번 생각하고 얘길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다른 후쿠시마취재팀은 구성원부터 특이했다. 직원들이 후쿠시마 취재를 거부하여 영상팀 최고봉과 피디출신인 임원이 온 것이다. 난 후배들보다 선배들이 편하다. 하지만 본인의 일을 남에게 미루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나미소우마시의 가설주택을 취재한다고 섭외를 다해놨는데, 담당자가 나와있는 현장에서 그는 뒷좌석에 앉아 기다리고 나보고 취소하라고 했다. 방법이 잘못되었다. 얼마든지 취소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구성상 필요가 없더라도 책임자가 나와서 머리를 숙여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그는 베테랑감독과 나에게 현장취재업무를 꽤 떠넘겼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솔선수범을 보여야한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다 파악할 수가 없다. 처음 만나는 팀은 더 그렇다. 이런 문제는 서로가 더 많이 얘기하고 더 관심을 가지고 원팀이라고 생각한다면, 간단히 해결할수 있다. 그런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최악의 팀, 잊을수 없다. 

2017년 모선배님의 소개로 공무원팀과 일하게 되었다. 일본의 고분시찰로 5명이 방문했다. 현역 공무원 3명과 외부자문위원 2명. 각자 개성들이 넘쳤다. 막내주임은 상사와 어르신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말년 계장은 투덜이스머프처럼 사사건건 불만이였다. 기다리면서 식사를 왜하냐, 맛없는 이런 소바는 처음 먹는다, 왜 메뉴판처럼 똑같이 음식이 안나오냐, 방이 왜이렇게 좁냐, 대충보고 갑시다 등 대책없는 사람이였다.


첫날은 이동이 많아 시찰이 없었다. 서로 친해질 겸 가볍게 시작한 맥주한잔, 나와 막내주임을 제외하고 모두 취할정도로 마셨다. 술은 술이고, 일은 일아닌가. 담날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첫장소로 향했다. 박물관 담당자는 의외로 한국어가 유창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안내할 때 속이 불편한지 제대로 설명을 듣지않았다. 회의중에는 전화벨소리가 울리고, 카톡을 하느라 정신없고 정말 뭐하러 왔는지 알수가 없었다. 담당자가 설명을 하는데도 두 그룹을 나눠 따로따로 움직였다. 어느덧 안내의 끝이보이자 다 봤으니 속풀이하러 우동이나 먹으러가자고 외쳤다. 참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다. 시찰이 끝나면, 난 그들의 민원을 들어주느라 정신없었다. 자식들, 아내 등 부탁받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주문사항도 가지각색이였다. 물론 일본어를 못하고 현지사정을 모르니 의지할 곳은 나밖에 없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도가 있다. 단순히 날 고용했으니 뭐든지 다 해줘야한다는 생각은 잘못된게 아닐까. 충분한 예산이면 몰라도 터무니없는 예산(난 거의 봉사수준)에 먹는건 좋은데서 먹어야하고, 잠도 좋은데서 자야하고 이건 진상들이 하는 짓이다.


그들은 마지막날까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난 칸사이공항에 그들을 먼저 내려드리고, 차량반납을 했다. 대략 20여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막내주임을 빼놓고 다들 들어가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면세점에서 사야할 것들이 많아서란다. 다함께 고생했는데 마지막 인사정도는 하고 헤어져야하는거 아닌가. 국민들이 피땀흘려 일해서 낸 세금으로 시찰온 건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일라이트는 2011년 외주제작사의 Y상이다. 상도덕도 없고, 배려라는 건 하나도 없는 사람이였다. 섭외가 80% 되었는데, 도중에 담당피디가 바뀌면서 회사 대표가 일본으로 오게되었다. 그는 날 만나자말자 호텔에가서 촬영내용을 정리하자고했다. 난 속으로 이런건 전화상으로 충분히 협의할수 있는데, 왜 현지에서 해야하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촬영구성안을 보고 취재내용을 파악한 것이였다. 수년간 방송일을 했으니,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할 정도의 실력이다보니, 본인의 마음에 들지않고 필요없는 것들은 제외시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난 그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줬고, 둘째날부터 촬영에 임하면서 사전에 요청했던 내용이 모두 섭외가 되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코디네이터 업무를 수행했다. 하루는 팀을 나눠서 난 이와테현을 가고, 그는 나가사키현을 가는 일정이였다. 그런데 전날 비용이 얼마드는지 확인하고나서는 취소하라고 했다. 일본인카메라맨을 섭외하고 신칸센 티켓팅을 마친 상태인데 머리가 멍해졌다. 그 후 추가로 섭외된 곳은 필요없다면서 취소가 계속 이어졌고 서로 골만 생겼다. 마지막날 정산도 깔끔하지 못했다. 매번하는 그만의 수법인지 모르겠지만, 사전에 견적서를 보내줬는데 돈을 다 안가지고 온것이였다. 서로 양보할건 양보해서 비용조정을 하고 구두상으로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 줄수가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취재했던 내용이 충분하지 못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그림이 좋지 않으니 섭외한 나 또한 책임을 지고 손해를 보라는 것이였다. 정말 참을수가 없었다. 버스 떠났는데 손을 흔들면 뭐하나 싶었다. 난 그가 제시한 돈을 받고 마무리했다. 방송 후, 방송본을 받는 순간 난 감정을 조절할수 없었다. 촬영하고 방송에 사용하지 않은 아이템을 모아서 다른 방송사에 꼭지로 제작해서 재판매를 한 것이였다. 그는 재주가 좋아서 돈을 벌고, 난 그의 궤변으로 받을 돈도 다 못받는 신세가 된 것에 억울보다 분노가 치밀었다.


한국사회에서 대중들이 대기업의 갑질, 공기업의 갑질 얘기를 많이 한다. 당연히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소기업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도 그렇게 대우을 받았으니, 자신보다 더 약자에게 갑질을 해야겠다는 발상에서 나온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일반고객인 우리도 알바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갑질에 대한 기사도 종종나온다. 딴나라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다. 결국 화를 내고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제대로된 대우를 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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