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어떻게 이겨냈지?
2023년 봄, 나는 캐나다 토론토 어학연수를 앞두고 있었다. 4월 2일 출국 예정이었다. 덤덤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초조함과 걱정이 있었다. 물리적인 조건과 '나'라는 존재가 받을 정서적, 사회적 인식에 대해서도 불안이 없었다면 거짓이거나 허세였을 것이다.
출발할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상상이 커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 심장이 벌렁대며 목이 뻣뻣하고 어깨가 뻐근해지는 것이었다. 캐나다 어학연수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과 영상들을 찾아보며 충혈된 눈으로 아침을 맞곤 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어떻게 이겨냈지?
거실에 여행가방을 활짝 펼치고 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현실감이 생겼다. 가방을 싸는 일은 불안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캐나다의 날씨와 기온을 확인하고 가볍고 밝고 견고하고 세탁하기 쉬운 옷들을 골랐다. 비가 자주 온다니 후드가 달린 바람막이를 넣었다. 혹시 모를 파티를 위해 리본 달린 오간자 블라우스랑 스커트와 구두도 챙겼다.
평소에 신을 신발은 가볍고 닦기 좋고 걷기 편한 걸로 트레킹이나 운동을 위해 레깅스도 이너탑도 챙겼다. 소모품과 피부관리 제품은 편의성과 실용성을 고려했다. 속옷, 수건은 그램수가 낮고 흡습력이 좋은 걸로 장만했다
짐 싸기는 예측하는 일이었다. 결정을 내린 자신을 믿고 따르는 과정이었다.
여권 만료기간을 연장했다. 캐나다 비자를 받고 비행기 왕복티켓을 구매했다. 유학생 보험도 신청했다. 유학원을 통해 공부할 어학원을 계약했다. 홈스테이도 결정했다. 공항 픽업도 신청해 두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도 혼자서 잘 해내고 있었다
파일에 모든 서류를 정리해서 챙겼다. 언어가 안 통하는 경우라면 입국 시에도 필요할 것이고 실생활에도 유용할 것이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도 영문으로 준비하고 치과 점검도 했다.
가방 싸기 만큼 집안정리도 신경 썼다. 베란다 하수구 방충제 뿌리기부터 집안 구석구석 제습제 넣어두기, 현관 자동문 배터리 교체까지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았다.
스마트폰 국내 사용 정지 신청과 환전도 해 두었다.
가방에 넣은 물품들은 간단하게 쌌다. USB 보조배터리, 블루투스 스피커, 어댑터, 충전기, 노트북, 시계, 다이어리, 필기구, 한국기념품(엽서), 마스크, 화장품 (스킨, 로션, 알로에젤, 선크림, 마스크팩, 바디로션), 위생용품(굳이 필요치 않은 품목이었다), 면봉, 손톱깎기, 고무줄, 빗, 거울, 칫솔, 치약, 치실, 샴푸, 트리트먼트, 무향 비누, 속옷, 잠옷, 양말, 수건, 손수건, 레깅스, 브라탑, 수영복, 긴팔티 2, 반팔티 5, 점퍼, 재킷, 바지 3, 스카프, 운동화, 단화, 구두, 실내 슬리퍼, 모자 2, 선글라스, 안경 2, 가방, 반짇고리, 요가매트, 진드기시트, 상비약(공진단, 유산균, 타이레놀 2, 감기약, 항생제, 소화제, 지사제, 파스, 아시클로버, 후시딘), 휴족시간. 목록은 이 정도였다. 기내용 캐리어랑 20인치 캐리어 한 개로 충분했다.
가방을 싸는 동안 즐길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의원에서 거금을 주고 공진단을 지었다. 식구들에게 보이스피싱 대비 암구호도 말해 두었다. '공진단'. 엄마의 어학연수를 적극 찬성해 준 딸은 암구호 하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을 거라며 재미있어했다.
가방을 싸는 동안 불안은 실체를 보여주었다. 실체가 있는 건 막연함을 없애주었다. 덕분에 떠날 준비는 설렘과 흥분으로 이어졌다. 인생 선배님께 장학금도 두둑이 받았다. 무엇보다 다 늙어서 공부하러 가다니 기특하다는 놀림은 큰 응원이었다. 나는 기대에 부응해서 열공하고 오겠다고 뻥뻥 큰소리를 쳤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선물로 준 가습 촉촉 마스크는 긴 비행에 도움이 될 거였다.
'불안이'와 함께! 하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기였다. 불안과 두려움은 생존과 발전의 필수요소라고 했던가. 함께 떠날 친구가 있으니 위험보다는 모험이고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