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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오늘의 니즈카드는 '여유, 편안함, 홀가분함'입니다

by 편J


2023년 4월이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탔죠. 그때 나이는 55세였습니다. 50대에? 혼자? 캐나다로? 어학연수라고?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용감무쌍했던 내가 지난 경험들을 글로 써 보기로 마음먹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의 내가 어떤 감정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캐나다까지 가는 방법, 어학원 공부 과정, 여행, 어학연수에서 얻은 교훈들... 그런 표면적인 얘기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거창하게 '갱년기에는 어학연수를 떠나세요' 하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신체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어서 새로운 처방이 될 것 같았죠. 그러나 그것은 장기적 관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쓸까? 저렇게 쓸까? 하고 궁리하다 보면 사람들의 질책이 먼저 들리는 듯했습니다. 몸이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무슨?, 노후준비 해야지 어딜 간다고?, 아이들에게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모르나?, 이 나이에 영어가 무슨 쓸모가 있다고... 이런저런 생각들로 길은 있으나 발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거죠.


5개월 간의 어학연수는 재미있었고 너무나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스스로도 좋았다고 평가하고 있죠. 그런데 경험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물론 글솜씨도 걱정이었고요. 마음이 발효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요? 차라리 자랑하려는 생각이었다면 신나게 썼을까요?


심리대화 전문가 임철웅 저서, [마음이 정리가 된다]에서 '마음 점검 체크리스트'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좋아하진 않는다.' 이 문장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나를 잘 모르지만 나는 나를 좋아하려고 애쓴다' 책의 귀퉁이에 마음을 작게 써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를 좋아하려는 마음은 억지로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해야 할, 좋아하려는 나의 실체, 사실적인 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정리'라는 말이 마음에 훅 안겼지요.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마음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정리가 된다] 프롤로그의 문장입니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생활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던 거였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진실을 이제야 발견했네요. 심플 라이프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Simple is the best를 목표로 맞이했습니다. 그랬더니 지난날들이 다 기억의 돛을 달고 '진짜 나'를 반기는 느낌이 듭니다. 하늘, 날씨, 바람, 흔들리던 풀잎, 빗방울까지... 단순함이 모든 걸 풍성하게 불려 놓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마음이 정리가 된다]에서는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면 자신에 대해 더 선명하게 알게 된 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만약 더 복잡해졌다면 지금까지 피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면을 알게 된 것이라고도 하는데요. 두 가지 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기 어려웠던 건 나약함이었습니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때에 '너무 잘 달려서 마라톤에서 1등을 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미리 겁먹고 피했던 거였죠. 걱정을 앞세워 행동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굳게 먹은 어리석음이었습니다. 두려워하는 부분이 자신의 가장 취약함이라고 합니다. 연습하고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거죠.

많은 연구에서 실제 3개월 이상 지난 사건은 현재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하다고 한대요. 맞습니다. 2023년이었으니 3달에 3달도 넘게 지난 일입니다. 오래 묵혀두었지요. 이제야 마음이 동한 건 단순함으로 삶을 정리하려는 욕구가 나를 움직인 덕분입니다. 오늘의 니즈를 실현하려는 의지입니다.


매일 비폭력대화 공감카드 중에서 니즈 카드를 뽑아보는데요. 59개 중에서 마음이 말해주는 방향을 생각해 보는 거죠. 오늘 내가 선택한 카드는 '여유, 편안함, 홀가분함'입니다. 우리 몸은 선택에 맞춰 변화한다고 하죠. 토론토 온타리오주 스카보로의 홈스테이에서 지냈던 150일은 내게 심플 라이프 그 자체였습니다. 내가 바라던 욕구였고 몸이 알아차릴 만큼의 여유였고 편안함이었고 홀가분함이었습니다. 이제 새 연재를 정하고 글을 쓰기로 선택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고 홀가분해집니다.

이렇게 프롤로그를 쓰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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