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심했는지
작가 김영하는 '언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했다. 콕 찍어 언제라는 답은 없었다. 다만 '작은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과 그 선택으로 '커지는 불안까지 감내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다.
답은 살아내고 뭔가를 해낸 끝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불확실한 미래는 그 완성의 시간에 '편집'되고 '윤색'한다는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언제 어떻게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심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
어학연수를 다녀온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사건에 '겁나 멋진' 이유를 지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어떤 특별한 경험은 또 다시 무엇을 할까 궁리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 된다는 것이다.
굳이 갈래를 나누면 '하고 싶음'과 '해보자'였다.
원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했다는 것. 그리하여 남은 건 나였다. '하고 싶다'의 주체가 되었고 '해냈다'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은 다시 과거가 되어버린 시제들이지만
이야기를 쓰는 내가 생겨났다는 것으로 의미있음이다.
'...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산문집의 일부분이다.
오늘은 문장에 기대어 짧은 시간, 50대 아줌마가 살았던, 말을 배우려고 시도했던 타국살이, 물 설고 낯설었던 시절이 지금의 작은 선택에 방향이 되고 있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룻배를 저어 어딘가에 갔었다는 이야기. 그건 장소(캐나다, 토론토)이기도 하고 시간(배움)이기도 하고 가능성이라는 모험(도전)이기도 했다.
50년 넘는 삶을 사는 동안 겹겹이 둘러쌓인 틀 안에 살았었다. 성별, 나이, 고향, 학교, 규칙, 예의, 관계, 도리, 시선, 습관...
가장 큰 파격은 어학연수를 떠나 물리적 변화를 경험한 나였다. 또 지금 그 이야기를 글로 쓰는 나 자신이다. 이제야 머리 꼭대기에 난 뿔이 각을 버리고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는 듯하다. 지난 경험을 글로 엮으며 또 다른 언어를 익히는 셈이다.
내 이야기를 쓰는 일은 무거운 커튼을 들추고 무대 위에 선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랜 그림자 같다가도 실루엣이 본체를 삼키기도 하고 얼마쯤 습도를 머금은 그 정체가 나였음을 직관하는 일이다.
시간을 받아들이려는 애씀이다. 발음이 꼬였어도, 눈빛이 흔들렸어도, 제스처가 이상했어도, 감정과 표정이 어긋났어도, 조명보다 그림자가 크게 움직였어도, 정해진 동선을 잊어버렸다 해도... 그날 그 회차 공연은 단 한번 뿐임을, 그 시점을 기억하려는 것이다.
쌓이거나 희미해지거나 각색되는 대본들 속에 제 몫이 있음을, 까짓껏 살아냈음을 나름의 방식으로 그리워하는 의식이다.
이야기 속 사람을 들여다보려는 진지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