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았던, 가장 나누고 싶었던
내게 큰 발견이 있다. 삶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찾았다는 것이다. 사랑이다. 모래처럼 날리던 사랑이 습도를 품고 씨앗을 데려오고 초록을 피워낼 만큼 자라 나이테를 늘리고 있다. 문득 그 시작에 캐나다에서의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의 시작은 하늘일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첫째 날에는 빛을, 그다음 날에는 천공을 만들었다고 한다. 생명체를 위한 사랑, 신이 태초에 하늘을 만든 이유일지도 모른다
캐나다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좋았던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장 나누고 싶었던 건 하늘이었다. 누가 뭐래도 하늘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첫날은 홈마더가 어학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초등학교 입학식날처럼 어른을 따라 길을 나섰다. 든든한 등굣길이었다. 몸집보다 설레는 가방을 메고 제일 먼저 만난 건 하늘이었다.
벨라미 버스정류장, 케네디 전철역, 퀸스트리트 남쪽 트램 정류장...
어둠이 열리는 시간에 도시 속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앞서 지나가는 동안 선명하고 흰 구름이 하늘에 나타났다. 아침 인사는 코끝이 조금 싸한 상쾌함이었다.
토론토는 서울과 달리 고층 건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낮은 건물들 사이로 하늘을 더 가까이 느꼈던 것 같다. 서로 간섭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각각의 자유로움이랄까? 하늘, 바람, 햇살, 지나가는 비, 사람들마저도...
넓다는 말보다 더 넓고 높은 하늘, 생생하고 신선했다. 호수를 품은 하늘 이어서일까? 하나로 모인 물이 하늘만큼 땅만큼 풍성한 나라. 캐나다는 내게 하늘 호수의 나라로 남았다.
맘껏 숨 쉬고 누렸다. 품이 넓은 하늘 아래 얼굴과 팔다리를 내놓고 얼마나 신나게 보냈는지 돌아와서 피부색을 회복하느라 참 오래 걸렸다.
그 하늘 아래서 온갖 축제가 열렸다. 살사댄스를 배우며 신나던 광장에서, 잔디가 펼쳐진 공원에서 친구들과 깔깔거릴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네를 탈 때, 호수에 발을 담글 때,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도서관 유리창 너머로, 북창동 순두부찌개를 먹고 코리아타운을 걸을 때, 홈패밀리와의 산책길에도... 늘 동행이었다.
하늘은 어디든 머물러 주었고 언제나 올려다볼 수 있도록 열려 있었다. 스며들 듯 파랗고 맑고 깊었다
로저스 센터, 야구 경기장 지붕이 열리며 만났던 하늘 풍경도 잊을 수 없다. 비가 내리다가 날이 개인 때였다. 경기 도중에 돔이 열리는 행운을 만났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던 하늘. 그때는 타석에 오른 오타니선수(그때는 LA ANGELES 소속이었다)에게도 집중할 수 없었다. 환한 하늘에 홀딱 빠졌던 탓이다
토론토의 하늘은 고요한 일렁임이었다. 해류가 요동치는 바닷속이 아니었다. 온도와 흐름으로 같이 있음, 빛을 나눠 가진 하늘과 호수는 하나 같았다. 내 기억은 여전히 그 하늘 아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