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나누는 풍경
배나무 아래 일요일이 익어가고 있었다
캐나다 생활도 두 달쯤 지나서 홈스테이 가족들이랑도 어학원 수업도 어느 정도 적응한 때였다
그런데 조금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자주 찾아오는 헤어짐이었다
그즈음 이본, 줄리와도 작별해야 했다
휴가로 온 여행에서 어학원 3주 과정을 마친 이본, 스위스에서 온 줄리도 모두 떠났다
같은 집에 살던 나오미도 멕시코 집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친구들이 왔지만 처음 만났던 친구들만큼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어쩌면 마음을 덜 준 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처에 괜찮은 식당을 알려줄 수 있는지 묻던 이본에게 자주 가던 맛집 '마마스 덤플링'을 소개해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녀는 30대였는데 첫 만남에서 토론토에 온 흥분을 말하며 폰 배경을 보여주었다. 레인보우였다. 양성애자라는 고백을 들었던 순간 당황했었다.
하지만 캐나다로 모험을 떠나올 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수용하기로 했었던 건지 크게 벽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스스로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본은 K팝과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잘 알고 있었다.
코리아타운 북창동 순두부를 좋아하고 예전 양조장을 개조한 힙한 골목 식당에서 타코 즐기는 법도 알려주었다
봄꽃이 가득하던 공원을 산책하고 캐나다 문화를 배우는 특별 수업이 끝나면 제레미선생님이 알려준 바에도 함께 갔었다. 바 이름이 poet이었다.
오래된 목조건물의 테라스에 앉아 치즈가 듬뿍 든 아란치니와 마시는 맥주는 한 잔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이야기는 다 명랑시 같았다
... 토론토 야구팀 블루제이 굿즈샵에서 파란색 유니폼을 사 입고 먹거리를 싸들고 페리를 타고 갔던 토론토 아일랜드 소풍, 하늘길도 호수길도 바람색이었다
그녀와 있으면 길거리도 아이스크림 가게도 리듬이 넘쳤다
서로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가 하고 있는 인테리어 사업 얘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녀의 직원들은 토론토에서도 CCTV로 자신들을 감시한다고 우스개를 했다
사교적이면서도 사람을 존중하고 항상 매너를 지키려는 그녀의 성숙함이 멋있었다
10대였던 줄리는 늘 헤드폰을 끼고 혼자였는데 어느 날 하굣길에 지하철 같은 칸에서 만났다
홈스테이 방향이 같아서 이본과 함께 통학시간을 시끌벅적, 아웅다웅 보냈다
줄리는 온갖 색으로 변신했던 머리스타일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었다
나는 대학 내내 염색으로 변신을 거듭하던 딸의 엄마로서 줄리를 너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는 빨간색에 가까운 황금색이었던 것 같다
하얀 피부에 메리다(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 주인공) 같은 곱슬머리였다.
줄리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잘 탄다고 했지만 수업에서는 용감하게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발표하는 소녀였다.
케이트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이본과 줄리, 우리가 앉은자리를 크레이지 테이블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땡땡이는 아니었고 수업에 너무 열정적이었던 탓이었다.
발표도 토론도 열심히 퀴즈도 신나게 참여했었다
우리끼리 뒤죽박죽 엉성한 영어가 통하는 것이 신기했었다
헤어지기 전날 작별 파티가 끝나고 나눴던 포옹이 진하게 남았다
일요일 미사에서 돌아오자마자 홈아부지는 뒷마당에 숯불을 피웠다
새벽에 로렌스 마켓까지 가서 사 온 고기를 덩어리째 돌려가며 굽는 것이었다
빨간색 카우보이 모자를 쓴 로델린과 햇볕에 숯불에 익은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던 Mr Dungo, 아이처럼 신나서 뛰어다니던 리오나의 움직임까지
그날에는 모든 장면이 들어있다.
웃음소리마저 생생하다
꼬치에 꿴 소시지도 구웠다
모서리가 둥근 길쭉하고 납작한 빵에 넣고 소스를 듬뿍 올려 핫도그를 만들었다
크게 한 입 베면 쏟아지던 즙 사이로 피클과 머스터드소스의 합은 눈이 똥그래질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열매가 영글고 있었다
이유 없이... 자꾸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아니다.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떠나간 사람들이 그리워서였다
하늘만 올려다봐도 비행기가 그려놓은 흰 그림자만 봐도 울컥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였다
그리고 떠날 때가 오면 마음이 어떨지 알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행복하고 아프고도 슬프고
그리고 깊다는 생각을 했었다
감정, 그건 나무에서 영그는 과실처럼 지금 사람들과 함께 그 시간을 살아가는 거라는 걸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감정은 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에서 살아 숨 쉰다.'
감정심리학자, 바티아 메스키타는 감정이 어떻게 우리를 연결하는지 연구했다고 한다.
그녀의 책 [감정, 관계, 문화 (Between us)]를 펼쳐보다가 발견한 문장이다.
감정은 호흡처럼, 각각의 세계를 흐르고 있었다
덕분에 계절이 변하듯 만남도 헤어짐도 든든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날의 바비큐는 우리의 감정 언어였다
그렇게 감사도 익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