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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J 6시간전

달큰하고 귀한 친절, 시금치 무침

고소하게 천천히 초록의 힘이 번지기를


시금치가 제철입니다

한 겨울 시금치는 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잎에 당분을 올린다고 하네요

그런 이유로 붉은 뿌리를 달고 줄기도 굵게 자란 바닷가의 시금치는 포항초, 남해초, 섬초, 이렇게 특별한 이름까지 있는가 봅니다


겨울 시금치를 다듬고 무치면서 살아낸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모두 멈춘 것 같은 계절에도 존재를 드러내고 누군가에게 싱싱한 시간을 열어주는 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지네요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그림책을 열어봅니다

글 사이의 여백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진하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지금 바로 친절하기를, 조용히 모든 것을 압도하는 친절함에 대해,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약점을 보여줄 수 있는 대담함,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강함과 자신을 용서하는 사랑, 지금의 우리로 충분하다는 것, 계속 간다는 것, 함께 간다는 것...

모두가 고마운 일이라는 위로와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돌아갈 집이 꼭 장소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 지금 만나는 것들과 사이좋게 살아가라는 토닥임이죠


<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


이 그림책은 왠지 언 땅에서도 뿌리를 붉게 내린 겨울 시금치의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자신에게 친절하기, 자기 자신에게 뿌리내리기, 그래서 스스로 깊이 돌보기

책 속에서 소년이 마음자리에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친구로 들이는 일처럼 말이죠


계절 없이 다양한 재료들이 넘쳐도 우리는 몸으로 알고 있죠

어김없이 잘 살아낸 제철의 먹거리가 언 땅에서도 돋아났음을...

그런 믿음과 도움이 우리에게 추운 겨울을 싱싱하게 살아내는 힘을 줄 니다


시금치가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천천히 자란, 그것을 '로제트 상태'라고 한대요

오늘은 로제트 상태가 된 시금치에게 스스로 제 몸에 바른 달큰하고 귀한 친절을 청해봅니다

깨를 듬뿍 넣고 무친 시금치나물, 고소하게 천천히 초록의 힘이 번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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