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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위한 변명

그 무렵,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있었다.

by 편J


'그 무렵,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었다.' [데미안]에서 만난 문장은 마음에 들어와서 나를 꺼내주었다. 그리고 이 문장에 온몸으로 기대어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 무렵,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있었다.


그동안 썼던 시들을 꺼내보기로 하자 마음에서 글이 올라왔다. 나의 가식이 자란 곳, 시는 내게 쾌락이었다. 껍데기 속에서도 나의 오만과 위악은 통쾌했다. 그러나 죄의식도 함께 자랐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자꾸 욕심내서 모조품만 늘어나는 형국이었다. 알맹이도 없이 마음을 매혹시킨 건 검은 얼굴이었다. 다 허깨비 같은...


내가 무엇을 쓰는지도 모르면서 시를 얘기하고 그랬다. 건너뛰는 말의 덩어리를 은유라고 우기며 은유를 못 알아듣는다고 사람들의 무지와 무감각을 탓했다.

그토록 뻣뻣했던 날들, 시를 쓰던 나의 흑역사, 그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이건 다시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인가? 돌이나 철로 만든 두꺼운 발판처럼 묵직한 감정이다. 시를 쓴다고, 시집을 읽는다고, 시를 배운다고, 엉덩이를 들썩이던 지적 허영에 대한 자각이고 반성이다


서먹한 재회다. 체온이 없는 눈빛, 냉정한 악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재를 통해 나는 은혜를 입은 나의 세월을 끌어안고 고집을 꺾으려는 것이다


시는 여전히 낯선 얼굴이다. 주소록에서 지워낸 이름 같기도 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알고 있다. 시는 그때의 나였음을... 흑역사를 지워야 할까? 오히려 드러내놓고 말하면 미련 없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음을 괴로워하는 대신 마음에 쾌청을 들이려는 애씀이다


술을 마시면 시가 온다고 했던가? 시를 쓰던 때 주酒술에 입문했었다. 시가 옮기를 바라며 시인들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시가 뱉은 낱말들에 주문을 바르고 주머니에 묻었다가 꺼내보는 기행은 술주정일 뿐 발효되지 않았다. 시판에 발을 들인 후에는 시를 빼면 갈 데가 없었다. 결국 나만의 신비주의 사조에 기여한 것이었다


혁명이었을까? 시를 쓴다고? 왜? 뭐 때문에? 어쩌면 평화를 찾으려는 골짜기는 평화를 위협하는 반란군의 소굴 같은 것이었다. 시는 내게 촉수를 세우기를 주문했다. 축축한 세계의 감각을 요구했다. 낭떠러지로 가야 한다고 충동질했다. 결국 상상과 창조의 가뭄을 감추려는 본능은 우기기로 진화하고 말았다. 실체가 없는 우상이었다


그 무렵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있었다. 시가 내게 남긴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 있다. 귀 기울여보려는 것이다. 이제. 기억의 더듬이를 들어 순한 핏방울 자국 하나쯤은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막아서면 더 무너지는 둑, 거부는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일 거다. 무턱대고 달려들었던 불이 타고 남은 재를 추모하는 의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어젯밤 꿈을 꾸었다. 귀를 막고 있던 귀지를 시원하게 파냈다. 그 막강한 감정을 타고 삶에 기여할 글의 갈래를 결정한 것이다. 오래전 문예창작 전문가과정에서 공부하고 특별과외까지 하며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그 열정을 불러내고도 싶은 마음이다.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한 회한을 쓰겠다는 것이군

그래도 좋다.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이렇게 연재를 시작한다. 그 무렵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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