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문학도서관
오랜만에 한옥을 그리고 나서 다시 보니 써억 잘 그려졌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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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번 더 그려봤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루틴은 늘 비슷하다.
아주 조그마한 꼬맹이였을 때 배웠던 기억을 따라 시작한다.
연필로 흐리게 윤곽선을 그린다.
희미하게 그리고 쉽게 지워질 수 있도록 손에 힘을 빼고 살살...
보잘것없는 선들이지만 여기에서 잘못되면 전체 구도가 이상해지고 어색한 그림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이 있다면 여기서 지워야 한다.
’ 사랑은 연필로 쓰으세요’ 흥얼거리면서 선을 넣었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사람 사는 일도 그랬을 것이다. 어느 순간까지는 썼다 지웠다를 해도 괜찮을 때가 있었을 테지.
주변의 도움으로 아주 늦게까지 게다가 아주 여러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도 괜찮았던 사람도 있었을 테고, 너무 어린 나이에 단번에 지울 수 없는 선을 그어버려야 했던 사람도 있었겠지.
얼추 연필선이 그어졌다.
이제 고칠 수 없는 선을 그어야 한다.
주로 xx사의 피그먼트 라이너를 사용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걸 많이 사용하길래 따라서 써봤다가 그냥 루틴이 되어버렸다.
한번 좋아지면 뭘 잘 바꾸는 성격이 아니다.
‘아니 좋은데 왜 바꿔? 귀찮게시리.’
여기서부터는 조심스레 한선 또 한선을 넣는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내 힘으로 밥값을 벌어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일들은 돌이키기 쉽지 않다.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해야 하는 일인데, 아내는 그런 걸 잘하지 못했나 보다.
아이스크림은 굉장히 신중하게 고르면서 평생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은 대충 골랐다고 가끔 뽀글거린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보이면 ‘그림 그리기’를 꼬옥 시켜보세요. 연필과 피그먼트 라이너를 가지고 말이지요. ㅋㅋㅋ
지울 수 없는 선 넣기가 대충 끝이 났다.
그냥 두기엔 뭔가 밋밋하다.
연필로 음영을 넣어 봤다.
살면서 본업과 가정에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슬쩍슬쩍 곁눈질을 하고 다녔다.
팔랑귀를 가지고 태어나서 누가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면 홀랑 잘 넘어간다.
손해를 본 것 같을 때도 많지만 모노톤으로 지루했을지도 모를 내 인생의 도화지가 알록달록해지기도 했을 테니 그것도 괜찮았다.
연필선이 지저분하고 단조로워 보여서 색을 올려봤다.
알록달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촌스럽고 어색해졌다.
망했다. 저 산...어쩔겨?
그냥 건물만 그려야 했어야 했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산은 버리고 사진을 찍었다.
산을 포기하고 나니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가끔은 손절이 필요할 때도 있지.
2021년 11월 11일과 12일 사이.
우연한 생각에 빠져...밤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