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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03. 2024

93. 불안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오래전에 서점에서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나중에 제대로 다시 읽어야지 하고 아껴뒀던 책 중의 하나다.  

몰타에 와서 겨우 다 읽었다.  


세계사를 언급하며 사람들이 어떤 지위에서 불안을 경험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을 다룬 책이다.  

조금씩 읽다가 다른 소설도 함께 읽다 해서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내용이 많지 않지만 snobbish 라는 단어가 원래 어원의 정반대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영국의 대학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과 귀족 자제를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작위가 없다는 뜻으로 줄여서 ‘s.nob'으로 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게 현대 사회에서는 왜 속물을 표현하는 말로 변했을까.  

경멸의 대상이 작위가 없는 사람에서 높은 지위나 권력에 집착하거나 아부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책을 읽으면서 와닿는 부분을 그때그때 필사라도 해 놓으면 이렇게 한참 후에 느낀 점을 쓸 때 도움이 될 텐데 귀차니즘과 내 기억력에 대한 맹신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그저 읽어냈다는 생각만 가지게 한다.  


정영목 번역가라 믿고 읽었는데 약간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번역투의 문장들이 책장을 넘기기 어렵게 할 때가 종종 있어서 소리 내어 다시 읽기도 하고

내 잡념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건가 하면서 또 한 번 집중해서 읽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현대인이 가지는 불안(영어 제목은 Status Anxiety다)의 근원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것이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사회 구조적인 면과 능력주의를 숭배하는 서구사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는 설명은 잠시 위로가 되었다.


끝부분의 죽음을 다룬 글은 마음에 새겨두고 싶어서(내가 나를 너무 몰아붙이거나 타인을 평가하고 단정 짓지 않도록) 따로 찾아 적어 둔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교생활에 진정성이 찾아온다.

 

조건부 사랑에 흥미를 잃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추구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흥미도 줄어든다.  


우리가 지위를 얻든 잃든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다.


죽음에 대한 생각 옆에 갖다 놓으면 어떤 행동들은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다.’     




마음을 조금 여유롭고 관대하게 만들 수 있는 글귀다.  

타인의 사랑이나 인정, 감탄도 원하지 말고 내 길을 가면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고 싶다.


길가의 오렌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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