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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11. 2024

99. 여행의 이유

-김영하 「문학동네」


여행을 하는 이유와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학문적이기까지 한 내용도 있다.  

제목만 보고 선택을 안 했었는데 읽기 잘했다.  

여행지 소개가 아닌 그 당시 자기 느낌이 주로 있어서 좋았다.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집안일이 항상 놓여있는 집과 그 안의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라는 말에

씩 웃으며 동감했다.


내가 아침 일찍 무조건 집을 나와 카페나 도서관에 가거나 숲길을 걷는 것도

집에 있으면 방바닥의 먼지와 바구니의 빨래와 냉장고의 음식 재료들과 장롱의 헝클어진 옷더미들이 나에게 자꾸 손짓을 하는 것 같아서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여행경험과 그 당시의 사회상을 비교하기도 하고 다른 작가의 글이나 아주 오래된 서사시에서 자신의 여행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고 의미를 확장해서 깨닫기도 한다.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 하는 여행 중에도

특별한 누군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특별한 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어리둥절하다가 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소외감이 든다며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정체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씁쓸하다.


그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여섯 번의 전학을 했다고 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직장 때문에

한 곳에 적응하며 친구를 사귈 시간도 없이 계속 옮겨 다녔던 거다.  그런 유년 시절이 자신을 계속 떠돌이처럼 여행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게 오히려 안정감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었다.  

늘 떠나고 싶은데 붙박이처럼 매여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사람과 상황에 금방 질리고 시간이 지나면 처음과 다른 안 좋은 면들이 보여 얼른 헤어지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곳과 새로운 사람들을 원했다.  

그래봤자 다시 원점이라 이제는 관계 맺기보다 그저 멋진 자연풍경과 이야기가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늘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싶다.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을 원했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나의 못난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과 나를 제대로 알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함께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행을 원하는 건 늘 해야 하는 일과 설렘 없이 무덤덤한 관계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서이다.  

일상이 여행보다 더 중요하니까 그걸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공기와 마음을 내 안에 불어넣어야 했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글들이 많아서 녹음하고 싶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 저작권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지금부터 내가 직접 여행에세이를 쓸 거다.  


서울숲의 붉나무 꽃과 벌레집(오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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