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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Jul 28. 2022

오피스 친구가 필요해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점점 외로워진다. 어린 시절 함께 입사해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동기들은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새로 들어오는 젊은 친구들과는 가까이하기도 어렵다. 상사 욕하고 점심메뉴 정하고 가십거리 전하느라 바쁘던 회사 메신저의 알림은 울리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메신저가 고장이 난 건 아닌가 괜히 창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본다


“안녕하세요, Y대학교 나오셨지요?”


 메신저가 살아 있음을 알게   지난달 경력직으로 입사한 이경아 부장의 메시지 덕분이었다. 낯선 회사로 이직해서 외롭게 회사생활을 해오던 그녀는 직원 데이터베이스에서 대학교 동기 동문인 나를 발견하고 무척 반가다고 한다. 함께 점심이라도 하자는 그녀의 메시지는 외로움에 치를 떨던 나를 설레게 하였다.


“그 호프집 아세요? 저 거기 완전 자주 갔었어요.”


쌀국수와 짜조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우리는 대학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신촌 구석진 골목의 내 단골 주안 호프는 그녀의 단골집이기도 했고, 폭망 했던 내 첫 소개팅 장소였던 더블더블은 그녀가 생일파티를 하던 곳이었다. 이야기를 할수록 그녀와 난 공통의 추억이 참 많았다.


우리의 수다는 퇴근  회사  선술집으로 이어졌다. 대학생활의 추억, 직장생활의 고단함,  회사 또라이들에 대한 험담, 매니저로서의 고충  그동안 외로이 가슴속에만 담아뒀던 이야기들이 맑은 소주잔과 함께 그녀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얼큰한 취기와 함께 들어간 노래방에서는 공일오비, 지오디, , 조피디의 추억  노래들을 끄집어내어 목청 터져라 불렀다.


“우리 친구 할래요?”


“그럴까요? 그럼 지금부터 말 놓기?”


대학시절처럼, 우리는 손가락을 걸고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그녀는 홍대 방향, 나는 을지로 방향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나도 이제 다시 친구가 생겼다. 회사 친구.




“안녕하세요”


숙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관성 때문이었는지, 다음날 아침, 회의실에서 그녀와 마주쳤을 때,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던 그녀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황망하게 손을 내리고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어젯밤 분명 친구 하자고 반말하자고 해놓고 내가 뭔 짓을 한 건지… 이 회의가 끝나면 바로 찾아가서 농담이었다고 말하고 어깨동무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다. 회의실 책상 건너편에 앉은 그녀의 표정이 어두웠다. 난 빨리 이 회의가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우리 무슨 사이예요?’


회사 메신저의 알람이 울리고 그녀로부터의 메시지가 노트북 화면에 떠올랐다. 섭섭해하는 마음이 짧은 문장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채 답장을 하기도 전에 다시 그녀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우리 그냥 어젯밤 엔조이한 사이예요?’


‘당연히 아니지! 너랑 난 친구… ‘라고 서둘러 키보드를 치는데 회의실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맞은편 그녀의 얼굴은 만취했던 어젯밤 얼굴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맞다, 오늘 내가 이 회의에서 발표를 하는 날이었다. 그렇다. 내 노트북은 회의실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회사에서 가장 핫한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진 않았지만, 그들끼리 오가는 수만 통의 메시지에  이름은 도배되어 있었다. 새로 입사한 여자 부장님을 하룻밤 엔조이 취급하고 친구사이로 하자고  세상 가장 나쁜 남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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