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침부터 이상한 날이었다. 출근길 들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은 내 담배를 계산하며 태연의 ‘들리나요’를 흥얼거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세이지 나무 샴푸 향이 낯선 여자의 머리끝에서 풍겨왔다. 점심시간 식당에서는 계산대 사탕바구니에 평소에 아무리 찾아도 없던 누룽지맛 사탕이 가득했다.
사무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 책상 위 달력을 뒤적였다. 그녀와 헤어졌던 그 여름이 세 번째 반복되고 있었다. 언젠가는 한 번은 마주치지 않을까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그녀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일부러 마주치지 않으려 서로 노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취기에 그녀에게 연락할까 봐 술도 자제했다. 약속이 잡혀도 장소가 여의도면 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슴속에서 그녀는 생각보다 서서히 자연스레 묻혀갔다. 그렇게 절절했는데 그렇게 뜨거웠는데도.
사탕이 입안에서 녹으며 누룽지의 씁쓸한 단맛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가슴속에서 감당 못할 그리움이 울컥 올라왔다. 이건 반칙이다. 그녀의 세이지 나무 향기도 그 노래 멜로디도 이렇게 한 번에 날 덮치는 건 반칙이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그녀의 흔적들을 묻어왔는데, 그녀가 떠오를 때마다 다지고 다져왔는데. 지난 삼 년간 묻어둔 기억과 그리움이 가슴 위를 흥건히 적시며 배어 나왔다.
오후 반차를 내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단정히 잘랐다. 집에서 깨끗한 셔츠를 골라 입고 여의도로 향했다. 그녀의 회사 건물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지하주차장에 내려 주차정산기 앞에 섰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그녀에 대한 기억들 중에 한 가지를 끄집어내어 버튼을 꾹꾹 눌렀다. 번호 하나하나가 또렷이 기억났다. 잠시 후 익숙한 그녀의 차 사진과 주차구역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난 저 하얀 차에 앉아 그녀의 샴푸 향을 맡으며 그녀의 노랫소리를 즐기곤 했었다.
그녀의 차를 마주하고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어색한 얼굴 표정을 감추려 입꼬리를 당겼다 놨다 반복했다. 차 유리 안으로 못 보던 카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굳어진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표정을 다듬었다. 블랙박스의 불빛이 깜빡이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 불빛을 마주 보았다. 망설이던 오른손을 슬며시 들어 흔들었다. 차창에 비친 엉거주춤한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잘 지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