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8일
설 연휴 회사에 출근했다. 연말과 연초,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 책상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서류와 오래된 쓰레기들. 이게 아니다 싶었다. 밀린 일도 하고, 서류 정리도 하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차이나타운을 지나 회사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더 고요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함께 아무도 밟지 않은 쌓여 있는 눈은 고요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살살 걸으며, 점심으로 먹을 컵라면을 사고 나서 나에게 줄 한 잔의 따뜻한 커피를 살 곳을 물색했다. 불이 꺼진 상점 속에서 고맙게도 불이 켜진 카페를 발견했다.
"아메리카노, 샷 추가요."
"그럼 쓰리 샷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진한 커피를 홀짝이며 눈길을 걷는다. 문학관 건물을 지나가다 벽에 새겨진 김영랑 시인의 시, 「함박눈」을 발견한다. 인천역에서 신포동에 있는 회사까지 가는 길. 눈이 오는 날, 새해에 걷는 길은 출근길이 아니라 짧은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정이기는 하지만 1월이 다 지나가도록 새해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새해 다짐보다는 내 앞에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씩 맞이하고 정리하기 급급했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 나에게 일을 시키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일들이 버겁고 크게만 느껴 가끔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강연에서 장강명 소설가는 어떤 사건으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 이후 일 년 동안 되는 일도 없고 불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간에 썼던 작품으로 문학상도 받고 전업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차분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해도 희망을 잃지 말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너무 들뜨지 말자고.
최근 급속도로 쇠약해지는 아빠를 돌보는 엄마가 그래도 이 정도로 걷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스쳐 지나간다. 엄마도 많이 힘드실 텐데 담담하게 감사하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어쩔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차분히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올해 새해의 말로 가슴에 새겨 본다. 고요한 눈을 맞으며 진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회사로 향한다. 고요한 거리를 마음껏 누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