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를 음미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곡들을 기억하는 곳이기도 하다. 뱅크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다. 자신만의 색이 있는 그가 좋다. 개성 있는 목소리에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정시로의 많은 명곡들이 있다. 가질 수 없는 너, 가을의 전설, 어떡하니, 헤어진 날의 일기 등. 많은 곡들이 있지만 오늘은 ‘이젠 널 인정하려 해 ‘라는 곡을 음미하려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노래가 지금 버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니까.
전에는 혼자였던 날들이 어색하지 않았어
오히려 자유롭게 사는 게 훨씬 더 편하다고 생각했어
내 안에 두 사람의 자리가 좁게만 느껴져
가끔 외로움은 내가 살아 있음을 알게 하는
이유라고 느끼면서 살아왔어...
*널 만났지 영화처럼 눈 내리던 날
맑은 눈만 기억에 남겼던 맨 처음 너의 모습
난 느꼈어
이젠 널 인정하려 해..
머뭇거리기엔 늦었어 난 네가 필요해
받아들이고 싶진 않지만
이미 너의 자리가 너무 커버린 거야
널 곁에 두려 해.. 어쩌겠니..
벌써 나의 마음을 모두 가져가 버린
너인데...*
과거 미니시리즈 ‘파파’의 ost였던 곡이다. 파파란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검색해 보니 배용준과 이영애가 주연이었던 드라마였다. 이곡이 나온 1996년이면 HOT가 데뷔했던 년도다. 당시에 이곡을 들은 기억은 없다. 지금처럼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으니까. 라디오에서 듣거나 앨범을 구매해서 들어야 했다. 이 노래 제목이 조금은 건방져 보이기도 한다. 너와 나라는 동등한 입장에서 네가 뭔데 인정하니 마니 라며 트집을 잡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기 보단, ‘너의 존재가 내 맘 속에서 커져가는 걸 인정한다 ‘ 이렇게 해석하면 좋겠다.
이곡은 지극히 남자의 관점에서 쓰인 곡이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남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걸 바라본다. 특히 남녀 관계에서 만큼은. 락발라드의 기본 공식은 내 감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내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그녀의 행복이 소중했던 그 시절. 아무튼,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녀와의 추억을 생각하고 미래를 축복하는 것이 그 시절 노래의 국룰이었다. 그들은 상대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모른다. 일방적으로 감정을 배설하는 그 순수함.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었다. 자의식 과잉, 중2병이라는 단어 따위가 그 시절의 순수함을 덮어 씌우는 것이 싫다. 노련하게 밀당을 하거나 그녀를 두근거리게 하는 법은 모르지만 그냥 마냥 좋아해서 울부짖던 그 순수함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