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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 브레인롯

너의 주 양육자는 엄마란다

by 돌돌이

일이 늦게 마치거나 학회 등으로 아이들을 못 보고 잠들 때가 있다. 단지 24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아들들에게서 먼가 낯선 모습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의 성장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 건 나이를 먹어서겠지? 아들이 쓰는 언어는 하루가 다르다. 키와 몸무게 보다 아들이 쓰는 말에서 성장을 느낄 수 있다. 엄마 아빠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첫째와, 이제는 단어 두 개를 함께 사용하는 둘째까지. 매일을 보다가 24시간을 안 봤다고 급격한 성장이 이뤄질까 싶지만, 부모는 알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그 말뜻을. 그만큼 아이들은 빨리 자란다.


첫째는 퉁퉁퉁 사후르를 입에 달 고 산다. 아내는 이탈리아 비속어를 이름으로 가졌다며 괴랄하게 생긴 AI캐릭터를 싫어한다. 나도 이름도 길고 자극만을 주는 캐릭터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들은 내가 보여준 이탈리안 브레인롯 공식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 내가 한 글자만 잘못 이야기해도 아들은 혀를 굴러가며 내 실수를 바로 잡는다.


[아빠. 브르르 브르르 파타핌이야. 브로로가 아니라.]


뜻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생긴 녀석들의 이름이 내 머릿속에 하나둘씩 쌓여간다. 어느덧 열 종류의 이름을 외우고 아들과 함께 엄마 몰래(?) 영상을 보기도 했다. 숨기다 보면 더 하고 싶어진다. 어렸을 적 게임이 재밌는 이유는 성취의 달콤함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못하게 해서 더 재밌었던 것이다. 매일 먹으면 치킨도 지겹다. 이탈리안 브레인롯도 마찬가지일터.


상대적으로 덜 혐오 스러운 케릭터를 골랐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났지만 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는 아들의 입에서 떠날 줄 모른다.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들에게 옷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준 것이다. 와이프는 분개했지만 포기해 버렸다. 세상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퉁퉁퉁을 외치고 있었으니까. 아들은 주말에도 이탈리안 브레인롯 캐릭터 옷을 입고 싶어 했다. 백번 양보해서 커피 모양의 캐릭터가 그려진 옷만 바깥에서 입기로 했다. 발 달린 상어와 몽둥이를 들고 있는 눈 큰 캐릭터는 잠옷으로 쓰기로 했다. 혐오감이 느껴지는 캐릭터는 입고 다니면 안 되니까.


아들아. 네가 좋아하는 옷들만 남 눈치 안 보고 입고 싶은 마음 잘 알아. 하지만 너의 주 양육자는 엄마란다. 아빠는 … 너에게 아주 작은 일탈만 줄 수 있어. 아빠도 락밴드 로고가 그려진 옷을 입고 출근하고 싶지만 셔츠를 입고 출근하잖니.


p.s - 아내는 아들 셋을 키우는 기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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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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