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낭만

부산의 밈

by 돌돌이


점심을 먹다가 인스타에 올라온 피드를 보고 사래가 들릴 정도로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옆에서 같이 밥을 먹는 선생님이 괜찮냐고 물을 정도였다. 나는 부산사람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과 군대, 직장을 서울에서 보내긴 했지만 학창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고 지금도 부산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산의 밈이나 과장된 표현과 이야기가 너무 재밌다. 불편하다기 보단 공감을 하게 된다.



낭만이 있다에서 기대를 했다가, 저쪽 구석에서 울라는 반전까지. 얼마나 웃었는지 숟가락질을 멈추고 글을 두 번 세 번 읽었다. 길 막지 말고, 질질 짜지 말라는 어른의 뜻이겠지? 아마도 엄마를 찾아주거나 신고해서 그곳에 아이가 있다고 알려줬을 것이다. 부산은 츤데레력이 강한 곳이다. 대놓고 간섭을 하기도 하지만, 티 안 나게 챙겨줄 때가 많다.



댓글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담배빵을 얼굴에 죠진다는 표현도 웃기고 남자 얼굴에 흉터하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웃기다. 마지막 만원까지도. 미안해서 만원을 쥐어줬을 것이고, 남자 얼굴에 흉터가 있어도 괜찮다는 것도 분명 당황해서 한 말일 것이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바로바로 책임 소재를 묻겠지만, 내가 자랄 당시에도 아이들은 흔했으며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담배빵을 얼굴에 죠지는 일은 없었지만, 어른들은 예의가 없을 땐 남의 아이라도 혼을 냈다. 아이들도 사과를 하고 혼나는 것을 감수(?) 했다. 낭만이 있는 시기였다. 야만의 시기일 수도 있지만.



부산에서 살다 보니 우리들만의 문화를 공유하게 된다. 언어 사용부터 행동까지. 전장연은 부산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지 않는다. 부산사람들은 참지 않았다. 장애인 생존권을 위해 예산과 관심을 촉구한 것은 알지만, 부산 시민 또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살아 나가고 있다. 그들에게 발을 묶는다는 것은 싸우자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처럼 매너 있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들 합심해서 공동의 적을 몰아낸다. 적이라는 개념보다는 상대라고 하는 게 맞겠다. 우리를 막는 상대를 위해 함께 뭉치는 것이다. 낙동강 저지선은 6.25 때도 뚫린 적이 없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부산을 그리워한다. 나도 그랬고 주변의 친구들도 그랬다. 서울에서 사는 친구들도 부산을 그리워하는 건 매한가지다. 발전이 없고 노인과 아파트만 있는 도시라고 하기엔 이 공간이 너무 소중하다. 바다가 보이고 오지랖이라 느껴질 정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이 좋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부산은 다시 일어설 거라 믿는다. 유라시아 대륙의 첫 관문이자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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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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