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라는 가수를 처음 접한 것은 군대 시절이었다. 후임이었던 이 xx상병이 나에게 이야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박경국 상병님. 빅뱅은 조만간 대박 날 겁니다. 진짜 무대랑 춤, 노래까지 최곱니다.]
2006년이었는지, 2007년이었는지 기억은 가물하지만, 후임의 말은 맞았다. 군대에서 할 거라곤 남성잡지와 음악프로그램, 주말에 볼 수 있는 비디오 정도였다. 비디오라는 단어조차 어색해져 버린 지금, 빅뱅을 처음 만났던 시간을 떠올린다. 군인 치고는 음악방송에 관심이 없었지만 신곡과 여자 아이돌의 무대는 전부 꿰뚫고 있었다. 22살의 나는, 젊음과 시간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용법을 몰랐다.
과거는 미화되고 힘들었던 시간도 아름답게 포장된다. 군대에서 이룬 것이라곤 한자 2급에 통과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책은 많이 읽었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깊게 읽진 않았으니까. 당시엔 일과를 끝내고 작업을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당시엔, 한자 2급 시험을 친다는 이유로 일주일 정도 일과와 작업을 면제받았다. 대신 떨어지면 영창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작업을 열외 시켜줄 일은 없으니까.
군대의 기억과 추억은 지금도 선하다.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들이 사는 곳, 학력, 재산 등이 무색할 정도로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다. 우습게도, 중앙대를 다닌다는 이유로 나는 브레인 취급을 받았다. 100명이 넘는 중대에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군인은 두 명뿐이었다. 최전방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읽지 못하는 친구도 제법 많았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그 친구들은 나보다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옷을 예쁘게 다림질하곤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누구나 다 같이 닮아간다. 나도 그 친구들도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냈다.
다른 중대의 병장이 자살을 한 뒤부터 부대의 분위기는 바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창을 가고 부대가 개선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병장의 죽음이 뉴스에 나왔을까? 지금이라면 나왔겠지만, 생각보다 군부대에서의 죽음은 쉬이 사라진다. 내가 알기론 그 군인의 사망을 언급하는 곳은 없었다. 국가의 아들이라 칭송하는 것은 딱 써먹기 좋은 프레임일 뿐, 죽으면 남의 아들이다. 징병제는 군인을 한낱 소모품으로 여기게 만든다.
일과가 끝나고 스마트 폰이 보급되고 여가 시간이 주어지는 요즘과 우리가 지내던 당시의 군대를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모님 세대의 군대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 또한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군대에선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 7만 원의 월급을 받고 일과 후에도 작업을 하던 21살의 이등병 시절은 지금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같이 근무를 서는 병장에게 갈굼 당하던 추운 겨울의 탄약고를 떠올려 본다. 끈적한 연애이야기를 준비해오지 않으면 군생활은 앞으로 지옥으로 변한다고 호언장담하던 모 병장은 잘 살고 있을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언제나 자신이 제일 힘들다. 핸드폰도 없이 임진강을 바라보며 북한군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던 우리들. 부대원들과 함께 뒹굴던 시간이 그립다.
p.s - 다른 부대 군인들을 아저씨라고 불렀었다. 그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던 연대장이 호칭을 공모한 적이 있다. 당시 선임이든 권 oo상병은 ‘혈우’라는 명칭을 써냈다. 피를 나눈 전우라니. 진지했던 그의 표정도 눈에 선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