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을 끄고 잔 덕에 평소보다 늦은 버스를 탔다. 매번 보이던 직장인들과 학생들은 없다. 버스정류장도 한산하다. 사탕을 물고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만 있을 뿐. 나는 지각을 할 것 같아 초조한데 학생은 여유로워 보였다. 평소보다 늦게 버스를 탔을 뿐인데 보이는 인물과 풍경이 다르다. 그리고 버스 기사님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버스를 느리게 운전한다. 택시를 탈걸 그랬나? 충분히 제시간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후회해 봤자 소용없지만 시계와 창밖을 번갈아 보면서 심장이 뛰는 걸 느낀다.
요 며칠 사이 심장이 뛸일이 많았다. 원내 QI 경진 대회 발표를 하기 전에 느꼈던 그 설렘이 바로 그중 하나다. 그냥 발표하는 거라는 생각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었는데 강당을 채운 인파와 분위기를 보니 긴장이 되었다. 요 근래 긴장을 한 적이 얼마였을까? 발표를 하기 직전과 마이크를 잡은 초반은 긴장이 되었지만 연습을 했던 덕에 크게 실수를 하거나 떨리진 않았다. 만족할 만한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잘 마무리되었다. 응원을 하러 온 동료들 에겐 미안했지만.
살면서 긴장을 하거나 심장이 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각을 할 까봐 심장이 뛰었고, 다수 앞에서 발표를 하기 전에 또 심장이 뛰었다. 그 두근거림을 뒤로하고 미션을 완수하고 나왔을 때의 그 허탈감이란. 개운한 감정보단, 아쉬움과 허무감이 내 안을 스쳐 지나갔다. 지각은 하지 않았고 발표도 실수 없이 마쳤다. 결과가 비록 아쉬웠지만 발표는 나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긴장은 그동안 변화가 없던 일상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수많은 사람에게 기대를 받고 인정받았을 때의 충만감과는 별개로, 나 자신 또한 해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우습게도, 발표를 마치고 내시경실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인과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써야 하는구나 싶다. 신기하게 주제가 떠오르고 스토리가 떠오른다. 나는 내시경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직업의식과는 다른 소설과 작가라는 직분을 향해 다시 걸어갈 생각이다. 나에게 소명이란 내시경으로 환자를 살리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그런 나를 지탱해 주는 주춧돌이다. 나라는 존재를 돌이켜 볼 수 있도록 쓰고 또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