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뒤쳐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소비자의 위치이기 때문에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으니까.

by 돌돌이


AI가 만들어갈 미래가 궁금하고 두렵다. 아이폰이 세상을 바꾼 것처럼, 스마트폰처럼 생활 밀착가능한 AI 머신이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메타의 VR이 선점을 할지, 또 다른 무언가로 나타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적응해 갈 것이다. 나 또한 챗 지피티와 제미나이를 쓰고 있으며 글의 조언자 역할로 사용하고 있다. 브런치에 쓰는 글과 신문에 쓰는 글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뉘앙스가 맞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챗 지피티의 등장으로 논설이나 에세이를 첨삭해 주던 수많은 교수와 명문대 학생들의 부수입이 줄어든 건 사실 아닐까?


챗지피티와 제미나이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글을 알맞게 다듬는다. 내가 투고하고자 하는 신문사가 중요하게 보는 관점도 설명해 주고 내가 쓴 표현의 잘잘못도 알려준다. 내가 쓰는 건지, 녀석이 쓰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녀석이 추천한 문장이나 제목은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서 AI와 협업한 글들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내가 쓰는 글은 내 색깔과 습관이 묻어 있다. 그들은 내 색깔과 말투도 비슷하게 하지만 사유의 깊이가 더 깊다(?)는 단점 아닌 장점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 이상을 보고 그 너머를 생각하는 AI의 답변을 볼 때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가 준 아이디어나 문장을 그대로 쓰진 않지만, 내가 보지 못했던 일면을 캐치해서 알려줄 때면 멍하니 그 답변을 보다가 활용하는 것이다. AI는 사용자가 추천해 준 아이디어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AI의 프롬프트를 수정해서 내 잘못을 냉정하게 첨삭해 달라고 하니 AI가 더 엄격한 톤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녀석의 엄정함에 반기를 드니 내 글의 수준이 이모양이려나?


AI는 내폰의 최상단에 위치해있다


내가 하는 이야기와 메시지는 경험에 기반한 넋두리와 개똥철학에 가깝다. 이 글들을 비슷하게 흉내 내는 녀석을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신기함이 앞선다. 과거에는 근거 없는 발언을 하고 논문에는 없지만 있다고 우기는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이러한 할루시네이션이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AI는 관점을 열어놓고 대화를 한다. 논문의 p값이 0.5 이상이 되면 흔히 임상적 유의미함이 낮다고 해석하곤 하는데 녀석들은 표준화되지 않았다고 하거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 답변을 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편협하게 p값만 들여다보며 논문을 읽어왔던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처음 챗 지피티가 나왔을 때, 로또 번호를 물어보고 운세를 물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의학지식을 묻기도 하고 내가 쓴 글에 대한 피드백도 받는다. 올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순서로 가야 할지 상담도 한다. 이제는 AI가 내 삶에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AI의 세상에서 살아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처럼 단순히 조력자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뒤쳐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소비자의 위치이기 때문에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픈것들을 하며 살아야지.


p.s - 브런치의 글들은 AI의 도움과 사용 없이 쓴 글입니다. 도움을 받았다면 더 잘 썼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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